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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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비운다는 것

2014-02-08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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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중/ 수필가

설까지 쇠었으니 이제 확실하게 한 살을 더 먹었다. 신년모임에서 만난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새해에는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우며 단순 소박하게 살겠다는 말을 했다. 모든 화가 욕심에서 비롯되니 욕심을 버려야 한다는 말이다. 욕심이 번뇌의 근원이 되고 그것이 결국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상하게 하여 건강을 잃는 불행을 초래한다는 말이기에 공감하는 바가 컸다.

그러나 다른 한편 생각해보면 인간에게 욕심이 없을 때, 과연 그 삶이 충만함이나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욕심이 있기에 의욕도 생기고, 욕심이 있기에 미래를 설계하고, 욕심이 있기에 더 나아지겠다는 진취적 사고도 생겨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인간에게서 욕심이 사라진다면 삶은 제자리걸음 아니면 퇴보가 되고 말지 않을까. 게으름과 권태가 우리를 둘러싸고 말 것이니 욕심이 전혀 없는 삶도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겠다는 생각이다.


욕심은 어느 정도 필요하나 지나친 욕심은 화근이 된다는 것이리지나온 한 해, 별 탈 없이 살았다는 것은 은혜로운 일이다. 라. 과욕은 금물이어서 삼가야 한다는 것을 너나없이 잘 알고 있지만 절제하기란 퍽 어려운 일이다.

지인 중 K는 건강하고 의욕적인 여성이었다. 활동적이던 그녀가 어느 날 갑자기 쓰러졌다. 혈압이 높았는데 주의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녀답게 투병에 있어서도 적극적이며 열성적이었다. 약간의 마비가 남아 있긴 했지만 기적적으로 회복이 되었다.

꾸준한 재활치료로 마비증세가 다 풀려 갈 무렵 뜻하지 않게도 그녀는 다시 쓰러졌다. 본인은 물론 가족과 주변사람들이 받은 충격은 컸다. 완치단계에서 재발이 되었으니 회복이 불가능하리라는 예측 때문이었다.

긴 투병생활로 그녀는 초췌하고 노쇠한 모습이 역력해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그런 그녀를 나는 한 동안 잊고 살았다. 그런데 얼마 전 마켓 주차장에서 우연히 만나고는 깜짝 놀랐다. 그녀는 완전히 쾌유되어 발병 전보다 더 건강해 보였다.

두 손을 잡고 “좋아지셨군요. 축하해요”하는 인사를 하자 그녀는 고맙다며 뜻밖의 대답을 했다. 마음을 비우고 욕심을 내려놓은 것이 투병의 비결이었다는 것이다. 처음 쓰러졌을 때는 ‘왜 내가 이런 일을 당해야 하나’하는 원망과 억울한 마음이 컸고, 꼭 이겨내겠다는 오기로 분노하기도 했지만 결과는 재발이었다고 했다.

두번째 투병에서는 원망하는 마음, 억울한 마음, 빨리 낫겠다는 욕심을 모두 내려놓게 해달라는 기도를 쉬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자 마음이 편해지며 감사하게도 건강이 회복되는 기쁨을 얻었다고 했다.

대화를 나누던 중 승용차 한대가 우리를 덮칠 듯 속력을 내며 달려왔다. 겁에 질린 우리는 재빨리 비켜섰고 나는 험한 말을 하며 두 눈을 사납게 부릅뜨고 그 차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그녀는 차가 지나간 뒤에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저 운전자가 아주 급한 일이 있나 보네요. 예쁘게 봐주십시다.”

그녀의 말들은 금빛 모래언덕에서 흘러내린 고운 모래처럼 조용히 내 가슴에 쌓였다. 마음을 비운다는 것, 그것은 너그러움과 사랑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구나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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