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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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좋아’

2014-01-21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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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태상 / 전 언론인

‘너나 아프고 청춘하세요! 우린 안녕하지 못하다고요!’가 2013년 겨울 한국 대학에 나붙은 대자보의 푸념이라면 2013년 미국인들이 가장 짜증을 많이 내는 단어로 ‘아무렇거나(좋을 대로)’란 뜻의 ‘웟에버(whatever)’가 선정됐다. 한국에선 80년대 대자보에 등장했던 ‘반미, 혁명, 해방’ 같은 운동권 용어 대신 ‘안녕, 불안, 사회’ 같은 일상용어가 등장했다는데 미국에선 이 웟에버가 5년 연속 짜증나는 단어 1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웟에버란 단어는 ‘마음대로 해’나 ‘좋을 대로’ 등의 의미로 쓰이지만 부정적 또는 긍정적 어느 쪽으로도 사용할 수 있는 것 같다. 부정적으로는 ‘아무렇거나 상관없다’ ‘내 관심 밖이다’ ‘내가 어쩔 수 없다’ ‘될 대로 돼라’는 체념 상태에서 내뱉는 허탈감의 표시일 수 있다. 그 반대로 긍정적으로는 ‘아무래도 좋다’는 달관의 경지에서 발하는 소리일 수도 있다.

영어로 표현해서 ‘계란이 있으면 오믈렛을, 레몬이 있으면 레모네이드를 만들라(If you are given eggs, make omelet. If you are given lemons, make lemonade)’고 한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성공적이고 행복한 사람은 무엇을 얼마만큼 가진 사람이 아니고 가진 것을 최대한 활용하고 선용하는 사람이라고 하나 보다.


옛날 1960년대 내가 젊어서 서울 약수동에 있는 아파트에 살 때 이 아파트에 관리인 한 분이 있었다. 이 아파트에 2년 남짓 사는 동안 그는 결근 한번 하지 않고 아침 6시부터 밤 9시까지 거의 잠시도 쉬지 않고 복도며 층계를 비로 쓸고 물걸레로 닦았다. 하루는 이 아저씨보고 하던 일 잠시 쉬고 우리 집에 들어와 차 한 잔 드시라고 해도 사양하는 것을 권해 그는 마지못해 들어와 함께 얘기를 좀 나눴다.

자수성가한 이 아저씨는 그가 젖먹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일곱 살 때 엄마까지 잃어 시골 이웃집에 얹혀 머슴살이를 하다 그의 나이 열여섯에 서울에 올라왔단다. 처음에는 지게를 지고 부지런히 짐을 나르다가 짐수레를 끌면서 3년 안에 돈 100만 원을 모아 그가 나이 열아홉 살 때 결혼하고 군에 갔다 제대한 후 도배와 미장이 목수 일까지 하면서 헌 집을 사 수리해서 팔기 시작, 점점 집을 늘려 그 당시 시가 1,000만원이 넘는 큰 집을 갖고 있고 그 집 일부는 세를 주었으며 아들 셋을 다 대학에 보내고 있었다.

이 아저씨는 글 한 줄 제대로 못 배우고 문학이나 예술, 학문이나 사상에는 무식할는지 몰라도 인생살이 세상살이에는 그 어떤 학자나 박사보다 더 유식하고 박식하며 어떤 신부나 스님보다 더 성실하고 진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전에 런던대학에서 잠시 법률 공부할 때 인도에서 온 한 법학도로부터 인도의 성자 마하트마 간디의 두 아들 중 하나는 자살했고, 또 하나는 알코올중독자가 됐다는 말을 듣고 회의심이 생겼었다. 그가 정말 얼마나 훌륭한 인간이었을까 하고.

또 언젠가 다음과 같은 에이브러햄 링컨 말에 깜짝 놀라 감탄하면서 그에게 더욱 친근감과 존경심을 갖게 되었다. “그 어떤 여인이 나와 운명을 같이 하기로 한다면, 그 언제 그 누가 그럴 경우 나는 내 힘껏 그 여인이 행복하고 만족하도록 나의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이 일에 실패하는 것보다 나를 더 비참하게 하는 것은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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