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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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프업/ 테너플라이고교 12학년 천석주 군

2013-12-30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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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의 사랑과 신앙이 합격 비결”

▶ 척추측만증, 왕따 이겨내고 존스 합킨스 조기합격

장시간 책상에 앉아 있기 버거운 척추측만증과 중·고교 시절 이어진 친구들의 왕따를 이겨내고 SAT 만점 행진으로 마침내 그토록 원하던 존스 합킨스 대학에 조기 합격이란 알찬 결실까지 맺은 천석주(18·미국명 데이빗·테너플라이 고등학교 12학년)군.

이달 중순 합격 통지를 받아들고는 기쁨을 감출 수 없을 만큼 좋았지만 합격 여부를 확인하기 직전에 결과에 상관없이 가족과 함께 하나님께 먼저 감사의 기도를 드렸을 정도로 그간의 고통과 아픔을 이겨낼 수 있었던 밑바탕은 바로 가족의 사랑과 신앙이었다.

그렇다고 원래부터 늘 감사와 사랑이 넘쳐나는 마음은 아니었다. 친구들의 왕따는 얌전하고 조용한 초등학교 시절을 보내다 9년 전 미국에 건너온 후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적극적으로 친구를 사귀어보려 했을 때 갑작스런 척추측만증 진단을 받은 뒤부터 시작됐다. 쉽게 피로를 느끼다보니 친구들과 자유롭게 뛰어다니며 어울리기 힘들었고 키도 많이 자라지 않아 스스로 위축도 많이 됐다.


가족을 제외하곤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어릴 적부터 관심 있던 철학에만 빠져들었다. 고대 철학자들이 일반인과 다른 사고로 주변의 손가락질을 받던 모습이 자신의 입장과 같아 보여 갈수록 심취하다보니 또래와 공감할 만한 대화 주제와도 점차 멀어져갔다. 척추측만증 때문에 놀리고 괴롭히는 친구들도 많아 괴로운 시절도 오래됐다.

공부에도 도통 큰 관심이 없었다.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대학은 왜 가야 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던 시절이었다. 영혼이 자유로워지는 느낌이 좋아 히피 문화와 인도 음악에도 빠져들었다. 비록 공부에 흥미는 없었지만 고교 시절 AP과목만 8개를 섭렵했고 과목마다 A학점을 받는 우등생이긴 했다.

하지만 사춘기와 함께 찾아온 정신적·신체적인 고통 속에서 공부보다는 음악과 미술이 유일한 위로였다. 별다른 지도를 받지 않았지만 늘 좋아하던 미술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다보니 좀 더 깊은 관심이 생겼고 사람의 모습을 자세히 그려보겠다는 생각에 7학년 때 스스로 해부학 책을 사보면서 어느덧 의사라는 직업까지 꿈꾸게 됐다. 존스 합킨스 대학을 선택한 것도 장차 신경의학과 심리학을 전공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중·고교 시절 동안 계속된 마음의 고통과 혼란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신앙을 찾은 뒤부터였다. 애초에 계획도 없었고 원하지도 않았지만 억지로 참가하게 된 지난여름 나바호 단기 선교 참가가 결정타였다.

기대 없이 참가했던 선교기간 중 그토록 거부하고 싶었던 ‘인내와 순종’을 배우고 왔다. 사막 한 가운데에서 오랜 시간 길을 잃고 헤매는 동안 평소 같았으면 참지 못할 상황이었는데도 순간적으로 감정을 억눌러야겠다는 생각이 스쳤고 힘든 와중에도 서로 격려하고 웃으며 견뎌내던 다른 교인들의 모습을 보며 자신의 못난 모습을 반성하게 됐다고. 그날 저녁 회개 기도를 시작으로 너무나 달라진 마음가짐으로 선교활동을 끝냈고 일상으로 돌아온 뒤에도 계속 이어져 이제는 온 가족의 새벽예배 참석은 물론 함께 성경 통독하기와 기도생활까지 자신의 삶이 180도 바뀌게 됐단다.

봉사도 즐거워졌다. 무엇보다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을 따르는 순종이 얼마나 큰 변화를 가져오는지를 깨닫게 됐고 회계와 용서까지 배우면서 예전에 자신을 괴롭히고 왕따 시키던 친구들에 대한 미움도 사라졌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한때 자신을 심하게 괴롭혔던 친구로부터 수년 만에 느닷없는 사과까지 받았다.

일상의 삶이 뒤바뀌니 공부도 재미있어졌다. SAT-I 시험은 이전에 치른 첫 시험에서 2100점을 받았었는데 불과 두 달 만에 만점에 가까운 2340점을 받았다. SAT-II 수학, 화학, 생물 등 3개 과목별 시험에서도 모두 만점을 기록했다. 주 1회 지도해 준 형 같은 개인교사가 있긴 했지만 학원에 다니지 않고 거둔 성과다.
공부를 강요하지 않는 부모의 교육철학도 한 몫 했지만 좋아하면 뭐든지 스스로 하게 된다는 것을 많은 한인 학부모들이 깨닫고 명문대학보다는 인간의 가치관을 더 중요시 여겨주길 소망하고 있다.


나바호 선교 이전의 삶이 음이었다면 이후의 삶은 양으로 바뀐 것이라고 풀이했다. 주변에 우등생이 너무 많아 자신은 명함도 못 내민다며 겸손해하면서 이 모든 것이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움이란다. 특히 맨하탄의 ‘가스펠 휄로우쉽 교회(담임목사 성현경)’를 다니면서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난 것도 자신의 삶을 변화시킨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덧붙였다.

거의 독학으로 익힌 피아노 실력으로 클래식 음악을 작곡하기도 하면서 한때 작은 모차르트로 불리기도 했고 현재는 교회 찬양팀에서 키보드를 연주하고 있다. 학교에서 배운 바이얼린 실력으로 오케스트라 활동도 했고 물리학 클럽 및 챔버 뮤직 활동과 더불어 생태학(Ecology) 클럽의 부회장도 맡고 있다.
또래 청소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흔한 스마트폰도 갖고 다니지 않을 정도고 컴퓨터가 나오기 이전 시대가 훨씬 살기 좋은 세상이었다며 웃는 아날로그 감성마저 지녔다.
비록 힘든 과정이 있었지만 현재의 자신을 있게 한 것도 하나님의 뜻이 있어서라고 믿는다. 그도 그럴 것이 집안에서는 엄마를 살린 아들로도 통한다. 청담동에서 이름 있는 여성복 디자이너로 삼풍백화점에도 매장을 갖고 있던 어머니가 위로 누나 둘은 출산 직전까지 일했던 것과 달리 유독 자신을 임신한 직후에는 임신 초기부터 일을 그만두고 싶어져 매장을 접었더니 불과 두 달 뒤에 백화점이 붕괴되는 사고가 발생했던 것.

화가이면서도 해부학자이자 건축가, 조각가, 발명가, 기술자, 식물학자, 도시 계획가, 천문학자, 지리학자이면서 음악가였던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천군은 천종길·한성화씨 부부의 1남2녀 중 셋째다.

<이정은 기자> juliannelee@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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