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화나에서 미국 입국을 기다리는 차량은 끝이 없다. 4시간의 대기, 기다림이 지루하지만은 않은 이유는 금년 추수감사절 일정이 조금 색다르기 때문이다. 하나는 찬바람에 황토 흙이 휘날리는 허허벌판에서 추수한 농작물을 고스란히 농장 주인에게 넘겨준 후, 터지고 거칠어진 빈손으로 돌아가는 그들을 위로해주는 것이고 또 하나는 호기심이었다. 미국 국경수비대의 새 반응을 보고 싶은 것이다. 지난번 의료봉사를 마치고 돌아오던 우리에게 마약 딜러를 취조하듯이 강압적이던 그들이 내 여권에 기록된 전과(?) 기록을 읽고 어떻게 반응을 할까 궁금했다.
3시간에 걸쳐 샅샅이 뒤지던 지난번 검색보다 더 심할까? 아니면 결백한 내과의사라고 확인된 것으로 더 호의적일까? 이런저런 추측을 하고 있는 중에 여권을 건네받은 검열관이 모니터에 뜬 기록을 다 읽고 묻는다.
“이번에는 약품들을 얼마나 가지고 왔습니까?”“지난번 당신들이 나를 너무 힘들게 해 이번엔 약장의 약들을 다 빼서 멕시코의 창고에 쳐 박아놓고 왔지요”그때 일을 생각하니 슬그머니 다시 열이 뻗쳐 그들을 캠퍼차 안으로 안내하며 푸념하듯 반문했다.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에게서 총을 다 빼앗아 버리면 그런 군인도 군인이라고 생각합니까? 일전에 현지 창고에 보관한 약품들을 모두 도둑맞은 것을 당신들은 상상이나 할 수 있습니까?”검열관은 검색을 중단하더니 미소를 띠며 잘 돌아가라고 말했다. 북한에 김정은은 잘 있는지 농담까지 건넨다.
큰 캠퍼가 별다른 조사를 받지 않은 것도 몇 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지난번의 시련(?), 전과 기록(?)이 이제는 전화유복이 된 셈이다. 내과의사라는 것도, 또한 KOREAN 이라는 것도 그들이 알아 두었으니 전과자가 별 몇 개(감방에 몇 번 들어갔었는지를 나타내는 숫자)를 자랑스럽게 다른 전과자에게 뽐내는 기분을 알 것 같았다.
멕시코 국경을 들어 갈 때에도 마음이 무거웠었다. 차안에 그득한 200벌의 의류, 100켤레의 구두, 400개의 라면, 약품들, 휠체어 등등은 멕시코 티화나 경찰의 큰 검문 및 제지 대상들이다. 멕시코 청년 검열관은 검열 무마용으로 붙여놓은 1998년부터 의료 봉사한 사진들을 보더니 그 전에도 이 사진들을 보았다며 검색 은 하지 않고 웃으며 안녕히 가시라고 정중히 인사를 한다.
무거웠던 마음이 미국으로 돌아온 순간은 항상 가벼워진다. 적어도, 검열대상이어 조마조마했던 옷, 구두, 그리고 진통제등의 의약품이 지금은 그들에게 약간은 통증과 고통을 가볍게 해주리라는 흐뭇함 때문이리라.
마음은 항상 가벼워지는데 몸은 점점 더 무거워지고 있다. 무거운 물품들, 10시간씩의 긴 운전, 피로와 책임감의 짐이 몸을 짓누르곤 한다. 근육과 관절이 더 아파온다. 아니, 무릎은 크게 비명을 지른다. “아비샥”도 해결해 줄 수 없는 세월의 강에 건강도 같이 흐른다. 마음의 관절은 아직도 괜찮은데…그 세월 속에서 그들에게 우리가 크게 기여해 준 것이 없었는데도 그들의 가난의 어두운 터널 끝에 희미한 불빛이 보이기 시작한다. 세월이 해결해 주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