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마지막 정리

2013-12-06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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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만연 수필가·회계사

눈 깜짝할 사이에 연말을 맞았다. 젊어서는 시간이 더디 가는 것 같았으나 40대가 되자 점차 빨라지더니 50대, 60대에는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 같았고 세월도 가속이 붙었는지 70줄에 들어서자 흡사 KTX 열차를 탄 속도로 지나가는 느낌이다.

올해를 한 달쯤 남겨두고 정리해야 할 일들을 생각해 보았다. 지난해를 잘 마감해야 새해를 편안하게 지낼 수 있고 나아가 앞날에 대한 대비책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인생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사람들이 행복한 노년을 위해 여러 가지 계획을 세우는 것도 다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노년을 잘 보내기 위해서는 보통 3가지를 갖춰야 한다고 꼽고 있다. 첫째 건강, 둘째 경제력, 셋째 소외감 해소이다. 문제는 그런 조건들이 계획한다고 마음대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설사 노년을 완벽하게 대비해 놓았다 해도 인간은 머지않아 하나님께 돌아갈 존재이다. 그런 의미에서 죽음을 잘 준비해 놓는 것이 진짜 좋은 마지막 정리가 아닐까?지난주에 올 초부터 계획했던 일을 실행에 옮겼다. 마침 친지의 장례식에 참석했던 길에 납골당을 구입한 것이다. 구입했다 라기 보다는 예전에 사놓았던 묘지와 교환한 것이다. 다행히 두 가격이 비슷하여 큰 추가비용 없이 가능하였다.

작년 아이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엄마아빠가 죽으면 매장 대신 화장을 하겠다고 말하고 그 뒤처리를 부탁했었다. 우리가 묘지에 묻히면 아이들이 얼마간 찾아와 부모를 생각하며 추억에 잠기리라. 하지만 그것도 생전의 일이고 길어야 50여년 지나면 무연고 묘지가 될 것은 뻔한 일이다.

납골당은 입체로 된 조그마한 정방형 모양으로 모두 4개의 납골함이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우리가 화장을 해도 둘을 따로 뿌리는 것보다 함께 섞어 뿌리는 것이 덜 아쉬울 것 같은 미련 때문에 뒤에 죽는 사람을 화장할 때까지 보관해 놓기 위해서 납골당을 택한 것이다.

화장할 사람이 별별 생각까지 다 해서 우습게 들릴지 모르지만 두 가지 더 계획하는 일이 있다. 하나는 장례보험에 들려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장례에 따른 번잡을 주지 않으려는 부모의 마음이랄까, 우리 스스로 모든 것을 준비해 놓고 떠나고 싶은 것이다.

또 하나는 장례식을 잔치처럼 기쁘게 치러주기를 부탁하려고 한다. 이미 몇몇 지인과는 장례방법까지 상의해 놓은 상태이다.

하지만 이런 준비들을 고루 해놓고 죽는다 해도 한갓 부질없는 과욕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한해를 보내면서, 노년을 대비하면서 아니 죽음을 준비하면서 무엇보다도 먼저 정리해야 할 일은 외형적이고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지금껏 살아오는 동안 일가친척, 친구와 동료 그리고 그 밖의 사람들과 고의든 타의든 얽혀있던 매듭들을 나 혼자라도 먼저 풀고 좋은 관계를 회복하려는 마음가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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