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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 받는 비결

2013-12-05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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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여춘 시애틀지사 고문

최선승이라는 고향친구가 있다. ‘선생님과 스승님을 합친 이름’이라고 떠벌이지만 실은 한문에 해박한 그의 할아버지가 ‘이선승지(以善勝之)’에서 따 지은 이름이었다. ‘선으로 악을 이긴다’는 뜻이다. 그의 형 이름은 선경이다. 주역의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에서 땄음이 분명하다. ‘선을 쌓은 집은 자손 대에 반드시 경사가 있다’는 의미다.

한국의 대표적 ‘적선지가’로 꼽히는 윤증의 고택이 충남 논산군 노성에 있다. 내가 자란 눈다리에서 10리 길이다. 윤증은 숙종 때 우의정 자리를 고사하고 낙향한 꼿꼿한 선비다. 그의 저택엔 담도, 대문도 없어 누구나 사랑채에 들어가 신세를 졌다. 배고픈 주민들에게 노적더미를 풀어줬지만 자기 제사상은 가로세로 석자(90cm)를 넘지 못하도록 유언했다.

윤증은 서민들이 뽕나무를 기르는 것을 보고 문중에 양잠업 금지령을 내렸다. 가난한 사람들의 돈벌이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배려였다. 그의 고택은 6·25때 인민군 중대본부로 사용됐지만 주민들의 탄원으로 미군폭격을 면했다. 노성 윤씨라는 별칭을 얻은 그의 문중에서 윤봉길 의사, 윤동주 시인, 윤석중(아동문학가), 윤천주(전 문교장관)등이 배출됐다.


윤증보다 더 널리 알려진 적선지가가 경주 최 부잣집이다. 만석꾼을 300년이나 이어온 그의 가문은 수확한 쌀 가운데 3분의2를 과객들과 불우이웃에게 베풀었다. 과객들 먹일 밥을 짓는 데 들어간 쌀이 연간 1,000가마를 헤아렸다고 했다. 동학란 이후 소위 활빈당 의적들이 전국의 부자들을 처형하고 재산을 빼앗았지만 최부자 집안은 건드리지도 않았다.

우리 조상들은 자고로 착하게 살기를 추구했고 자식들에게도 그렇게 가르쳤다. 도교, 불교, 유교의 기본사상이 그런데다가 무속신앙의 영향도 컸다. ‘월천공덕’이 그런 예이다. 입춘 날 또는 정월 대보름날 밤중에 ‘아무도 모르게’ 개천에 징검다리를 놓아 많은 사람이 편히 건널 수 있도록 해주면 그 적선의 응보로 새해에 낀 액운을 피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그 적선이 단순히 거지에게 돈 주는 의미로 폄훼됐다. 동란직후 양산된 거지들이 한결같이 “한 푼 적선합쇼”라며 손을 벌렸기 때문인 것 같다. 요즘 그런 현상이 이슬람 국가인 인도네시아와 리투아니아에서 벌어지고 있단다. 적선을 의무화한 무슬림 교리 탓에 도시마다 거지가 사태나자 정부가 거지는 물론 적선하는 사람들도 싸잡아 처벌한다.

적선은 무슬림이나 유·불교 뿐 아니라 기독교도 적극 독려한다. “지극히 작은 자에게 굶주릴 때 먹여주고, 목마를 때 마실 물을 주고, 헐벗었을 때 입혀주고, 나그네로 찾아올 때 영접해주고, 병들거나 감옥에 갇혔을 때 찾아가 위로해주라”고 가르친다(마태복음 25장). 그래선지 2000년전 초대교회는 물론 현대의 전 세계 교회들도 적선(구제)에 역점을 둔다.

올해도 어김없이 시애틀 유니온 복음구제센터(UGM)에서 ‘고지서’가 날아왔다. 올 성탄시즌에 홈리스들에게 6만6,000끼니를 베풀 계획이라며 끼니 당 1.92달러씩, 최소한 10끼니분인 19.20달러를 기부해달라는 당부였다. 한국일보 시애틀지사도 추수감사절 날 독자들에게 연말연시 불우이웃 돕기 캠페인이 시작됐음을 알리고 십시일반의 성원을 당부 드렸다.

동포사정은 동포들이 더 잘 안다. 미국기관들도 모금행사를 벌이지만 동포를 위한 적선은 따로 모으는 게 바람직하다. 올해도 많은 동포가 ‘적선지가 필유여경’의 뜻을 실천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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