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궁정의 어릿광대’

2013-11-2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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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흥진의 주말산책

내가 생전 ‘미국의 어릿광대’라 불린 만능 재주꾼 코미디언 대니 케이(1987년 74세로 사망)의 영화를 처음 본 것은 중학생 때였다. 어느 것을 먼저 봤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둘 다 요절복통 코미디로 ‘브루클린의 키드’(The Kid from Brooklyn)는 서대문에 있던 동양극장에서 그리고 ‘궁정의 어릿광대’(The Court Jesterㆍ사진)는 용산에 있던 성남극장에서 본 것으로 생각난다.

코만 봐도 대뜸 유대인이라는(그를 고용한 명제작자 새뮤얼 골드윈이 뚜렷한 유대인 특징인 이 코 모양을 바꾸라고 요구했으나 케이는 거절했다고 한다) 것을 알 수 있는 빨강머리(영화에서 금발로 염색했다) 케이의 출생 100주년을 맞아 올 한해 그가 최초의 순회대사로서 봉사한 유니세프와 아카데미를 비롯해 여러 단체에서는 케이를 기리는 행사를 가졌다.

무대와 라디오 그리고 TV와 영화 등 다양한 매체를 종횡무진으로 누비고 다니면서 활약한 케이는 코미디언이요 배우이자 가수요 댄서였다. 케이의 특징은 마치 고무얼굴처럼 자유자재로 오만가지 표정을 짓는 얼굴과 혀 꼬부라진 소리로 말도 안 되는 단어들을 굴비 엮듯이 엮어 기관총 쏘듯 숨도 안 쉬고 줄줄이 쏟아놓는 대사와 노래다. 듣는 사람의 숨이 다 막힐 정도다. 이 재주 때문에 그는 무대에 오르게 되고 곧 이어 스타가 되었다.


브루클린에서 우크라이나 유대계 부모 밑에서 데이빗 대니얼 카민스키라는 이름으로 태어난 케이는 중학생 때부터 농담과 코믹한 행동으로 급우들을 즐겁게 해준 타고난 코미디언이었다. 내가 가장 좋아할 뿐만 아니라 할리웃 사상 최고의 코미디 중 하나라고 평가 받고 있는 ‘궁정의 어릿광대’를 보면 케이의 이런 생태적 코미디언의 특징이 다채롭게 표현되어 있다.

여기서 케이는 순회극단의 어릿광대로 나와 어쩌다가 궁정의 권력찬탈 음모에 휘말려 들면서 로맨스와 함께 칼부림까지 하는데 세상에 이렇게 우습고 재미있는 영화도 보기 드물다.

난 지금도 이 영화가 TV에서 나오면 깔깔대고 웃으면서 보는데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케이가 평생에 출연한 20편에 가까운 영화들은 모두 즐거워 할러데이 시즌에 온 가족이 함께 앉아 보면 안성맞춤일 영화들이다. 케이는 요부처럼 섹시하면서도 어딘가 순진한 구석이 보이는 버지니아 메이요와 여러 편의 영화에서 공연했는데 ‘브루클린의 키드’도 그 중 하나다.

케이는 미국뿐만 아니라 영국과 일본을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았는데 1948년 영국 왕실이 참석한 공연 때 귀하신 몸들이 케이의 익살을 가까이서 보려고 로열박스를 떠나 1층 앞좌석에 앉아 즐겼다는 에피소드가 있다. 난 웬만한 케이의 영화를 어렸을 때 다 봤는데 착하게 생긴 그는 많은 영화에서 철없는 아이처럼 굴어 어린 내게 더 어필했던 것 같다.

케이의 영화들로 잘 알려진 것은 ‘궁정의 어릿광대’와 ‘브루클린의 키드’ 외에도 빙 크로스비와 나온 ‘화이트 크리스마스’와 역시 메이요와 공연한 ‘월터 미티의 비밀의 인생’(이 영화는 벤 스틸러가 감독하고 주연한 신판으로 만들어져 연말에 개봉된다) 그리고 ‘인스펙터 제너럴’과 ‘한스 크리스천 안데르센’ 및 ‘파이브 페니스’ 등이 있다.

옛날에는 극장에서 본 영화가 상영되기 전에 세계 뉴스를 담은 필름을 먼저 돌렸었다. 내가 어렸을 때 이 뉴스필름을 통해 케이가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모습을 보면서 혀를 내둘렀던 기억이 난다. 케이는 악보도 읽지 못했는데 박자와 음률에 대한 감각이 뛰어나 디미트리 미트로풀루스 같은 마에스트로마저 그의 지휘를 보고 감탄했다고 한다.

요리와 비행에도 능했던 케이는 브루클린/LA 다저스의 열렬한 팬으로 팀을 위해 노래한 ‘다-저-스 송’ 레코드가 빅히트를 하기도 했다. 케이는 한 때 게이라는 구설수에 시달렸는데 그의 애인이 로렌스 올리비에라는 풍문이 나돌았었다. 케이의 부인 실비아 화인은 피아노와 작곡과 작사에 능한 음악인이었다.

워너 홈비디오가 할러데이 시즌에 딱 맞는 케이의 영화 4편을 묶은 DVD 박스 셋을 출시했다. *‘업 인 암즈’(Up in Arms)-케이의 데뷔작으로 2차 대전 중 두 쌍의 남녀의 엇갈린 사랑. *‘원더 맨’(Wonder Man)-메이요와의 첫 공연작으로 케이가 주특기인 1인2역을 하면서 갱에게 살해당한 형제의 복수를 하는 쌍둥이로 나온다. *‘브루클린의 키드’-온순한 우유배달부가 본의 아니게 프로박서가 돼 링에 오른다. *‘송 이즈 본’(A Song Is Born)-‘백설공주’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하워드 혹스 감독의 명작 코미디 ‘볼 오브 파이어’의 신판으로 메이요와 공연한다. 루이 암스트롱, 타미 도르시, 베니 굿맨, 라이오넬 햄튼 및 베니 카터 등 명 연주자들의 연주를 들을 수 있다. .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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