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대화의 깊이

2013-11-07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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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원정 / UC버클리 재학

대학입학 즈음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많이 지쳐 있었다. 수없이 스쳐 지나가는 인연들. 그들과의 가벼운 소통. 흔히 말하는 수박 겉핥기식의 대화들은 인간관계 성립의 기초 단계라 믿어왔지만, 어느 날 그 대화들의 ‘텅 비어있음’을 느끼며 회의에 빠져 들었다.

‘시간 때우기’ 식의 대화들은 나를 지치게 만들었고,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풀어 나갈 수 있는 이야기들을 되풀이하며 나는 생각하는 기능을 잊은 듯하였다. 또한 ‘이런 가벼운 대화들이 이 사람과의 관계를 어떻게 성립시킬 수 있을까?’ 같은 질문이 끝없이 나를 괴롭혔다.

미국 19세기 철학자이자 수필가인 헨리 데이빗 소로는 ‘왈든’에서 인간사회의 소통에 대해 서술하였다. 그는 ‘깊은 대화’가 인간관계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하였다. 위에 말한 것 같은 ‘가벼운’ 대화들은 사람과의 관계에 어떤 장벽을 만든다 생각하였다. 더 깊고 진실된 관계 성립을 위해선 ‘사소한’ 이야기들이 아닌 서로의 생각을 나눌 수 있는 ‘깊은’ 대화가 절실하다고 하였다.


‘가벼운 대화’를 회피하던 나에게 소로의 소통에 대한 글은 너무나 반가웠다. 동시에 내가 이해심이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너무도 빠르고 혼란스럽게 매일 매일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깊은’ 대화는 어떻게 보면 사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내가 경멸해오던 ‘가벼운 대화’들은 바쁜 생활 속에서도 인연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노력이 아닐까.

‘생각하기’를 포기하는 소극적인 또는 게으른 자세가 원인이든, 대화의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 바쁜 현대사회가 원인이든, 나는 여전히 깊은 대화를 갈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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