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병원 가는 어려움

2013-11-07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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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학재 수필가

사람팔자 알 수 없다고 했는데 정말 내 팔자 알 수 없다. 한국에서 불혹의 나이를 살고, 전혀 꿈에도 생각지 못한 미국 이민이라는 일이 벌어졌다. 미국은 영화에서 본 것 밖에 없는데 처갓집 5형제 가족 21명이 형제초청 이민이라는 그물에 걸려 미국 땅으로 몰려 왔다.

미국에 오고 보니 아차! 내가 큰 실수를 한 것이다, 후회가 되고 걱정이 태산이었다. 하지만 어찌하랴 쏘아놓은 화살이다. 미국에 다시 태어난 40살 철부지가 미국을 배우며 죽기 아니면 살기로 생존경쟁 전투에 투입 되었다. 새벽이 밤으로, 밤이 새벽으로 이어지는 시간과 땀의 싸움이 이민생활이다.

외롭고 서럽지만, 고향 형제 친구 추억 모두를 태평양 바다에 던지고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샛별보기 운동으로 디아스포라의 운명을 감수했다.


늦깎이 이민자가 힘든 것은 육체적 노동이 아니라 언어불통의 고통이었다. 공보계장 출신이 멀쩡한 벙어리가 되어 눈치코치에 손짓 발짓 영어로 살아가는 생활이 제일 힘들고 실망스러운 것이다.

세월은 이렇게 흘러 앞으로 3년만 더 살면 한국 인생 40년 미국 인생 40년의 분수령에 서게 된다. 이제 80의 늙은이가 되고 보니 그 동안 고생은 접어두고라도 지금부터 다시 생로병사의 인생길에서 세 번째 단계인 병의 고통이 말년의 인생을 괴롭힌다. 그 동안 비교적 건강하게 살았는데, 이제는 늙어가는 몸에 그 동안 무리하게 살아온 이민생활이 골병이 되어 병원을 자주 찾게 되고, 약 보따리도 늘어만 간다. 더구나 인생 70이 넘으면 마누라가 보배라는데 내 보배는 하늘나라에 먼저 가서 문패 달고 나를 기다리고 있다. 짝 없는 기러기로 살다 보니 건강이 허술해지면서 못된 병마들이 덤벼든다.

미국생활에서 영어 못하면 ‘쪽팔려’ 인생이다. 병원 예약부터 입원수속, 진찰, 수술, 의사면담, 퇴원수속, 보험 등등. 모든 절차가 힘들어 멀쩡한 벙어리 바보가 되는 것이다. 모든 것에 자식들 친구들 이웃들 신세를 져야 하는 것도 부담스럽다. 병원생활이 서글퍼서 다시는 병이 나도 죽으면 죽었지 병원에 오지 않겠다는 작심도 했다. “앓느니 죽지” 라는 말이 생각난다.

일전에 짤막한 신문기사에 인도네시아 병원이 의술 좋고 비용도 저렴해 외국환자들이 많이 찾아 간다고 한다. 더구나 미국보험으로 치료비를 결재할 수 있고 외국 환자에 대한 대우도 좋다는 기사를 보았다. 한국도 의료기술과 시설이 미국 일본에 못지않아 중국 몽고 러시아를 비롯해 미국 캐나다에서도 환자들이 찾아 간다고 한다.

한국병원이 많이 발전하면서 해외동포들이 모국을 많이 찾아간다. 나도 한국에 가서 각종 검사 치료를 받아보니 참으로 놀라웠다. 의술도 시설도 좋고 편리한 진료와 빨리빨리 서비스에 감탄했다.

한국도 이제는 두뇌사업으로 자동차나 쎌폰에 이어 병원사업에 뛰어들어 “기다리는 병원에서 찾아가는 병원”으로 시야를 넓혀야 할 것이다. 한국 속에 세계를 심는 시대에서, 세계 속에 한국을 심는 시대로 변화되어야 한다. 미국보험을 가지고 미국에 진출한 한국병원에 가서 한국말로 편안하게 치료 받을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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