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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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 생각나는 일

2013-11-02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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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윤태 시인

가을이다. 푸르던 잎들은 어김없이 붉게 물들어 간다. 뉴욕 주나 뉴욕 주 근처의 가을은 참 아름답다. 한 철을 살다가 단풍이 되어 고운 색깔을 휘날리다가 사라지는 나무들의 잎 새를 보며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차를 몰고 가는 버릇이 오래전부터 나에게 있다.

사라지기 위해서 이 땅에 온 모든 생명들, 그 가운데 사람도 있다. 사람이란 이름으로 와서 잠시 살다가는 가냘픈 생명들, 철학적으로는 사라지기 위해서 온 것이고, 미학적으로는 아름다운 일을 꾸미고 아름다운 짓을 하다가 사라지는 것이 이유일 것이다. 그 진행과 결과는 단풍잎이 되는 잎들이 보여주고 있다.

붉은 색으로 물드는 것만이 단풍이 아니다. 노란 색으로 변한 잎도 단풍이고, 붉게 물들이는 길을 가다가 멈춘 분홍색의 잎도 단풍이다. 어느 잎인들 빨갛게 물들기를 원하지 않았겠느냐 마는 빨갛게 물들어 가기 전에 분홍색으로 끝을 맺는 잎도 있고, 태어나기를 노란 색을 팔자로 지고 온 잎도 있으니 가을의 단풍은 붉은 색만이 아니다.


사람들의 마지막 가는 길이란 여러 가지 색깔을 뿌리면서 사라지는 가을의 단풍과 같다. 내 인생의 가을 색깔은 어떤 색깔일까? 궁금하다.

어느 사람이고 세상에 와서 힘들지 않게 살다가는 사람은 없다. 삶의 여정이란 고해라 했고 그 고해의 끝이 가을의 단풍과 같다.

살아가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지 해야 하는데, 하는 그 일에 흥미를 가지고 미치면 성공을 하고, 흥미를 잃고 지치면 힘이 들고, 인내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허둥대다 잡치면 망하게 된다.

한 세상 살아가는데 처음부터 가는 길의 방향과 가는 방법을 정해놓고 가는 사람이 있겠는가? 살다보면 길이 생기고 하다보면 방법도 생기는 그 길에서 생각도 안했는데 꼬이는 일도 많았고, 기대 밖에 성공을 거두는 일도 있었던 것이 인생살이 아니었던가.

기관사의 실수로 열차가 충돌한 철도청의 간이역에서 그 역의 역장이라고 플랫 홈에 꿇어앉히고 불량배의 험상한 얼굴을 흉내 내며 때리는 형사들의 매를 견디고 있던 죄 없는 아버지를 먼 발치에서 바라보았던 나는 그 후로 한국이 싫어졌었다. 법이 있다는 나라의 그 당시 한국의 모습이었다.

돌아가시기 사흘 전, 나는 숨결이 비단 실처럼 약해진 아버지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그 때의 일을 떠올리며 아버지의 가을을 생각하고 있었다. 말대로 파란만장 했던 아버지의 인생여정과 그 나이쯤의 노인들의 여정을 누가 정해 주었을까?이민생활의 외로움을 견디며 살아 온 늦가을의 노인들, 색깔 없이 떨어지는 낙엽처럼 아무 것도 남기고 싶지 않았을 것 같은 내 아버지와 그 세대의 노인들을 생각하며 산과 들에 가득한 단풍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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