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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진 칼럼] 누가 ‘대선불복’을원하나

2013-10-29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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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당이 대선 불복에 나서길 부추기는 새누리당

▶ 댓글 의혹-선거 부정-대선 불복, 뒤섞여선 안 된다

참 희한한 일이다. 새누리당이 끊임없이 민주당을 향해 ‘왜 대선에 불복하고 나서지 않느냐’고 권하고 있다. 국정원 댓글 의혹이 불거졌을 때 새누리당은 크게 움츠렸다. 민주당을 향해 대국민 선언을 함께 하자는 제의까지 내놓았다. 사건이 점점 커지자 자세가 바뀌었다. 민주당이 ‘헌법정신과 법률규정을 위반했다는 것’이라고 하는데도 ‘그게 대선 불복 아니냐’고 나오고 있다.

민주당이 빌미를 제공했다. 댓글 의혹이 국군사이버사령부로 확산되자 일부 의원들이 지난 대선을 “명백한 부정선거”라고 규정했다. 화들짝 놀란 쪽은 민주당이었다. 발언 말미에 “승복할 수 있느냐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고 붙였기 때문이다. 대변인이 서둘러 “대선 불복이 아니라 투쟁 강도를 높이자는 취지”라고 밝혔다.

불씨를 키운 것은 문재인 의원이다. 문 의원은 대선 결과를 수용하느냐 마느냐의 문제에선 당선자인 박근혜 대통령 이상으로 중요한 당사자다. 장문의 성명서 내용은 최근 언론의 논평과 여론의 향배를 제대로 반영했다. 대선 불복이라는 표현은 “국민과 야당의 당연한 목소리까지 (여당은)대선 불복이라고 윽박지르고 있다”는 대목이 유일했다. 하지만 “드러난 사실만으로도 지난 대선은 불공정했다. 미리 알았든 몰랐든 박근혜 대통령은 그 수혜자이다”라는 대목이 불쏘시개가 됐다. 성명서에서 5% 정도 차지하는 내용이다. 이 말을 하려고 나머지 95%를 들러리로 끼웠는지, 그냥 우연히 언급한 것인지, 정치적 의도를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다만 이 대목이 성명서의 전부인 양 알려졌고, ‘문 후보의 대선 불복 선언’이라는 해석까지 낳았다.


선거가 끝난 지 1년이 다 돼 가는 지금 대선 불복이라는 주장과 행태는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정치행위다. 민주당 일부 의원의 발언에 대해 한국일보는 ‘민주당 대선 불복 움직임을 크게 우려한다’는 사설(10월 23일자)을 통해 서둘러 경계했다. 댓글 의혹과 대선 불복은 같은 뿌리에서 나온 콩과 콩깍지일 수 있지만, 그로 인한 정쟁의 과정과 결과는 국가적 손실 차원에서 비교조차 안 된다. 문 의원의 성명이 나오자 새누리당은 “대선 불복의 유혹은 악마가 내미는 손길”이라며 기다렸다는 듯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진부하지만, 2000년 미국 공화당의 조지 부시 후보와 민주당의 앨 고어 후보의 대통령선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알다시피 일반인 투표에선 고어가 앞섰지만 선거인단 투표에서 부시가 이겨 대통령에 당선됐다. 마지막 선거인단 확정지인 플로리다주 개표를 둘러싸고 민주당은 ‘대선 불복’을 선언했다. 재검표가 이뤄졌고, 부시 후보가 몇 백표 차이로 이겼다. 문제는 부정선거 논란이었다. 부시 후보의 친동생이 주지사로 있는 곳이어서 투표함 실종, 투표시간 조정, 군부대 집단지지 등 부정행위가 있었다는 게 민주당의 주장이었다. 고어 후보는 소송을 했고, 유권자들의 농성과 시위가 이어졌다. 연방대법원은 시간이 없다는 이유 등으로 재개표 금지를 결정했다.

고어 후보는 법정싸움을 계속해야 한다는 주변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패배를 인정했다. “연방대법원의 결정에 동의할 수 없지만 이를 받아들인다. 이제 갈등과 이견을 접고 부시 당선자를 따르자”는 요지였다. 부시 당선자가 고어 후보를 두둔하면서 화합을 강조한 것은 물론이었다. 이렇게 종결된 저변에는 몇 백표 문제로 진영의 승패를 다투는 것보다 국가의 미래가 더욱 중요하다는 국민 다수의 여론을 중시했기 때문이다.

시계를 거의 일년 전으로 되돌린다 해도 나와선 안 될 대선 불복 논란이 지금 정치적 쟁점이 되어 있다는 사실만도 황당하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식으로 “민주당이 대선 불복에 나섰다”고 호객하는 새누리당은 여당으로서 자격이 의심스럽다. 또 민주당도 댓글 의혹의 진상을 규명하여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자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 진심이든 전략이든, ‘대선불복’은 언감생심(焉敢生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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