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억하는 것과 잊혀지는 것들

2013-10-18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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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혜석 / 샌프란시스코

얼마 전 천상의 목소리라는 이름을 가진 어린이 합창단의 공연을 보고 왔다. 집에 돌아와 아들과 마주 앉았는데 불현듯 생각나는 일이 있었다. 아들이 어렸을 때 어린이 합창단에 가입시키려 오디션을 보게 했던 기억이었다.

이것저것 생각들의 연결이 자꾸 어긋나기에 그 날의 일을 아들에게 물어보았다. 그런데 아들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전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그 때 생각들이 갑자기 엉키면서 흐릿한 장면들이 떠올랐다. 아들이 아니라 막내 남동생을 오디션 보게 했던 것이었다. 그 둘의 나이는 스무살이나 차이가 나는데...

얼마 전 친구 집에서의 일이다. 탐스럽게 자란 화분 두개가 싱싱한 잎을 드리우며 푸른 기운을 온 집안으로 뿜어내고 있어 한참 칭찬을 늘어놓았다. 그 때 어이없다는 듯 친구가 하는 말, “그거 네가 우리 이사할 때 사다준 것 아니니!” 머릿속은 하얗게 비어지고 화분과 나를 연결시켜주는 어떤 그림도 떠오르지 않았다. 불과 1, 2년 지난 일일 뿐인데 말이다.


아직도 나는 기억되는 일들이 너무 많아서, 잊혀지지 않고 마음을 휘저어서 앞으로 나아가는 길을 가로막고 있다고 여겨왔었다. 잊고 싶은 기억은 곁을 떠나지 않는데 기억하고 싶은 아기자기한 이야기들은 금세 잊혀지고 있다.

어린 시절 다정했던 친구들의 얼굴이 하나씩 지워지고 아무리 기억하려 해도 떠오르지 않는 이름은 가슴을 뚫고 휘돌아나가는 한 줄기 바람 되어 내게서 멀어지고 만다. 머릿속 너무 깊이 파묻혀서 피어나오지 못하는 기억들... 무엇으로 그 깊은 속을 파내어 그날의 일들을 살아나게 하고 잊고 싶은 기억을 덮게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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