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눈물

2013-10-19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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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중 수필가

사람의 마음에서 안 떨어지는 것이 아쉬움과 미련이다. 때때로 그런 것들로 인해 심정적으로 힘들 때, 나는 그리움을 남기고 떠난 남편의 묘소를 찾아 그린 힐 공원으로 가곤 한다.

그날도 오후에 무덤 잔디에 앉아 천상의 꽃밭에 있을 남편과 안부를 주고받고, 가족들의 근황을 전하고, 털어놓을 수 없어 내 심중에만 담고 있던 이야기들을 무언으로 나누고 있었다.

성묘객이 없는 묘원은 바람만 가득할 뿐 침묵 속에 적막하기 그지없었다. 그 고요를 깨고 어디선가 애통해하는 울음소리가 들렸다. 주변을 돌아보니 웬 중년의 남자가 어느 무덤 앞에 꿇어앉아 눈물을 뜨겁게 뜨겁게 쏟아내고 그 울음소리가 허공으로 퍼지고 있었다. 부모님의 무덤인가 아니면 아내의 무덤인가. 사랑하는 아내의 무덤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 남자의 우는 모습을 별로 본적이 없기에 시선을 떼지 못하고 바라보는 동안 내 가슴에도 슬픔이 차오르며 절로 눈물이 났다. 온 몸으로 우는 남자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받아들이는 눈물이었으리라. 석양을 등지고 우는 남자의 아픔을 저녁노을이 지니고 있는 여유와 아름다움으로 품어주고 안아 주고 삭혀주기를 바랐다.

활화산처럼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솟구치는 그 뜨거운 감정의 폭발, 참을래야 참을 수 없고 억누를래야 억누를 수 없는 그 울음은 누구에게라도 쏟아내지 못하면 한으로 남을 것이다.

특히 남자들은 울 곳을 못 찾아 자기 안의 눈물을 감추고 숨겨 놓지만 언젠가는 그 어디에선가는 쏟아내야 살 수 있을 것이다. 누구나 예외없이 자기 안에는 혹독한 더위에도 녹지 않을 만큼 가슴 깊숙이 얼음처럼 박혀 있는 아픔들이 있다. 그 아픔을 떨쳐내지 못한 채 숨겨온 삶의 찌꺼기 같은 눈물이 숨어 있는 것이다.

가끔은 그것을 쏟아내야 하는데 쏟아 낼만한 곳도 쏟아 낼만한 시간도 없다. 아니 쏟아내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을 것 같아 두렵기도 하다. 그러나 쏟아내야 한다. 참다 참다 펑펑 쏟아내는 눈물, 그 눈물이 있어야 제대로 살 수 있을 것이다.

눈물은 감정의 발산이며 흠도 티도 없이 깨끗한 순수 결정체이다. 보고 싶었던 사람을 만나면 반가워서 눈물이 나고, 아파 누웠던 사람이 일어나면 좋아서 눈물이 난다, 가진 자가 없는 자를 돕는 것을 보면 고마워서 눈물이 나고 가진 사람이 더 가지려고 욕심내는 걸 보면 슬퍼서 눈물이 난다.

사는 것이 절박할 때도 눈물이 나고 억울하고 속상할 때도 눈물이 난다. 하모니가 아름다운 음악을 들을 때도 눈물이 난다. 세상을 버리신 부모님께 행한 불효가 가슴을 치며 회한의 눈물을 흘리게도 하고 갓난아이는 요구사항이 있을 때 소리 내어 운다.

눈물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확실한 감정의 징표이다. 언어로 표명될 수 없는 내면의 함성, 그것이 눈물이 가지고 있는 핵심적인 의미다.

모든 것을 씻어주고 정하게 해주는 눈물은 우리 삶의 청량제이다. 가장 값진 것이기에 눈물 한 방울 아끼는 사람보다 눈물이 헤픈 사람이 더 정스럽게 느껴진다. 눈물은 인간을 아름답게 하는 진실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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