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어느 가을 하루

2013-10-12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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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광순 / 워싱턴

시시각각 형형색색 변하는 아름다운 계절이다. 가을의 정취를 만끽하고 싶어 웨스트버지니아에 있는 사과밭에 갔다. 파란 하늘을 이고 잘 익은 사과들이 나무에 주렁주렁 달려있다. 봄과 여름부터 해와 달, 비바람을 친구삼아 놀면서 이렇게 자랐으니 이제 가을빛에 실컷 더 놀고 나면 제각기 임자를 만나 우리 인간들의 혀를 즐겁게 해 주리라.

달달하고 상큼한 사과 향기가 어느덧 은은하게 코끝을 자극한다. 껍질째 한입 베어 먹는 순간 과즙이 풍부해 물기 많고 부드러운 속살이 입 안 가득 고인다.

사과 따는 일도 우리 노인들에겐 쉬운 일이 아니었다. 따는 방법도 모르겠고 손에 닿지 않는 것들은 긴 작대기를 준다 해도 행여 떨어져서 상처가 생기면 일년 내내 고생한 사과농장 주인에게 민폐가 될 것 같았다. 마음만 있었지 결국 우리는 사과밭 주인이 종류별로 수확해 컨테이너에 이미 수북하게 쌓아놓은 곳에서 골라잡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서산에 지는 해가 긴 그림자를 드리우면 하루일과를 마무리하듯 농부들도 올 한해의 결실을 맺는 가을 마무리 작업에 한창이다. 인생의 마무리도 함께 생각해 보는 햇살이 유난히 좋은 가을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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