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산다는 건 길을 가는 것”

2013-10-11 (금)
크게 작게

▶ 정용진 시인

“용강 벌 솟은 샘/ 지혜의 강 이뤄/ 빈 그릇 채워주기/ 불혹을 넘었네.// 사색의 오솔길 거닐며 쌓은/ 탐구의 연륜/ 주름 되어 번지고/ 피로서 쓴 책이/ 열을 헤어/ 성실한 인생의 조각가여// 러셀과 잡은 손/ 행복 느끼고/ 도산의 길 따라/ 훈훈한 마음으로/ 빙그레 웃는 얼굴// … 중략 …//큰 뜻 새기며/영원한 길을 따르렵니다.”이 시는 필자가 존경하는 안병욱 선생님 불혹에 올린 헌시다.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세 가지 귀중한 만남이 있다. 첫째는 배우자와의 만남, 둘째는 스승과의 만남이며, 셋째는 친구와의 만남이다. 일찍이 철학자 마틴 부버는 “나는 네 길 위에 있고 너는 내길 위에 있다”고 만남의 소중함을 일러 주었다.

안병욱 선생님은 누구보다도 인간의 만남을 소중하게 여기시고 가르쳐 주신 분이다. 나는 20대 학창시절에 그의 학문에 심취되어 그의 강의를 들으며 삶의 틀을 다졌다. 그의 ‘민족의 스승 도산 안창호’강연에 심취되어 흥사단우가 되었다.


“산다는 것은 길을 가는 것이다”를 일깨워주신 안병욱 선생님은 나의 정신적 아버님이시다. 내가 미국에 와서 학업 후 온타리오에서 땀 흘려 농장을 개척할 때 선생님 내외분께서 방문하셨다.

나는 선생님의 서도 경륜을 아는 지라 미리 지필묵을 준비하고 화선지를 폈더니 무엇을 써주랴 하시기에 충무공이 난중일기에서‘나의 마음이 무겁기가 산과 같다’고 술회한 정중여산(靜重如山)을 부탁했다. 그리고 몇 년 후 댁을 방문하였을 때에 써주신 제갈량의 ‘날이 맑으면 들에 나가 밭을 갈고 날이 궂으면 서재에 들어 책을 읽는다’는 청경우독(晴耕雨讀)을 주야로 애독하며 가보로 삼아 좌우명으로 마음속에 새기고 있다.

선생님께서는 삶이 성실무비 하셔서 하루에 한번 화를 내면 재수가 없는 날이라고 하셨으며 도산의 말씀을 쫒아 ‘훈훈한 마음으로 빙그레 웃는 얼굴’로 평생을 사셨다성품이 강직하고 정의감이 강해 바른 충고를 하셔서 P 정권 시절에는 모처에 연행되어 고초를 받기도 하셨다. 한번은 J총리의 초청으로 삼청동 총리공관에 가셨더니 용케도 평소 선생님께서 즐겨하시는 음식만 가득 차려 놓았더라고 한다. 술이 한 순배 돌아간 후 총리가 선생님의 손을 잡고 “저희들을 좀 도와주십시오. 문교를 맡아 주십시오”요청하였을 때 선생님께서는 정색을 하시면서 “나는 책을 키만큼 많이 쓰고 제자들을 키우다가 교탁을 붙들고 쓰러져 죽는 것이 나의 소원이오”하셨다.

그러자 총리가 “선생님을 학교까지만이라도 모셔다 드릴 수 있을 까요?”해서 총리의 차를 타고 학교에 도착하니 ‘안병욱도 결국 넘어 가는군’ 여기저기서 쑤군거리더란 일회가 생각난다.

선생님의 아호가 이당(怡堂)이니 평생을 소원대로 기쁘고 평안히 사신 분이다. 그러나 평생을 그리도 바라시던 조국 통일을 못 보시고 우리 곁을 떠나가시니 마음이 무겁고 조국 통일은 우리의 몫이 되었다. 1920년 평안도 용강에서 태어나 93세로 영면하시니 삼가 선생님의 명복을 빈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