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갈대

2013-10-10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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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개밥을 들고 나오면
마당의 개들이 일제히 꼬리를 치기 시작했다
살랑살랑살랑
고개를 처박고
텁텁텁, 다투어 밥을 먹는 짐승의 소리가 마른 뿌리 쪽에서 들렸다
빈 그릇을 핥는 소리도
들려왔다
이 마른 들판 한 가운데 서서
얼마나 허기졌다는 것인가, 나는
저 한 가득 피어있는 흰 꼬리들은
뚝뚝, 침을 흘리며
무에 반가워
아무 든 것도 없는 나에게 꼬리를 흔드는가
앞가슴을 떠밀어, 펄쩍
달려드는가

고영민(1968-) ‘갈대’ 전문

들판 가득 피어있는 흰 갈대꽃들은 먹이를 주면 꼬리를 흔드는 개를 닮았다. 빈들에 선 화자는 꼬리를 흔드는 개인 동시에 그들에게 던져줄 아무 것도 없는 빈손의 주인이기도 하다. 줄 것도 먹을 것도 없는데 대체 누가 누구에게 무얼 달라고 저리 침을 흘리며 꼬리를 흔들어 달려드는가. 대책 없이 가련한 짐승들이여. 바람에 우수수 쓰러지는 갈대밭 풍경이 황량하기만 하다.

임혜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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