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감정을 파는 사람들

2013-10-07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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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남희 / 샌프란시스코

몇 년 전 동생이 강남의 한 백화점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한 적이 있었다. 부유층이 주 고객으로, 백화점 매출 순위에서 부동의 1위를 고수하고 있는 그곳은 유난히 진상고객이 많았다고 한다. 무턱대고 반말을 하기는 예사이고 직원의 해명을 불친절한 응대로 몰아가 결국 직원에게 인사적 불이익을 주고야마는 손님까지 진상고객의 스펙트럼은 폭넓고 다양했다.

소비 자본주의 사회에서 고객은 왕이 되고 고객 만족은 새로운 이데올로기가 되어, 서비스 구매자인 고객과 서비스 제공자인 직원 사이가 흡사 주종관계처럼 되면서 새로운 형태의 노동을 탄생시켰다. 그것이 바로 감정노동인데 ‘업무상 요구되는 특정한 감정 상태를 연출, 유지하기 위해 행하는 일체의 감정관리 활동이 직무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노동 유형’이라고 정의된다.

백화점이나 마트의 판매원과 전화상담원이 대표적인 감정노동자인데, 대부분 여성들로 저임금을 받는 사회적 약자들이다. 이들은 아무리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고객에게 대항하지도, 회사로부터 보호를 받지도 못하면서 자신의 감정과 자존심을 판다.


이른바 갑을관계이다. 을은 갑의 부당한 요구조차도 수용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에서 사회적 이슈가 되었던 우유업체의 횡포는 갑을관계의 문제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또한, 현대사회에서 인간의 탐욕이나 기업의 이윤추구가 얼마나 왜곡된 형태로 진화되었고, 관습처럼 우리에게 스며들어 있는지 반추하게 한다.

타인의 감정은 돌보지 않고 내 기분, 내 감정만 생각하는 것과 자기 기업의 이윤 증대만 추구하는 모습의 본질은 놀랍게도 서로 닮아 있다. 타인의 감정을 소비하는 사람들이 을의 이윤을 착취하여 제 배만 불리는 갑의 횡포를 비난할 자격이 있는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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