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봉선화 꽃물과 뇌수술

2013-10-05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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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청원 내과의사

이웃 환자의 병문안 시 위로와 충고의 말들이 오간다. 이때, 다양한 종류의 반응이 연약해진 환자에게 반영되어지곤 한다.

지난 토요일 아침 일찍 전화가 울렸다. 그분은 전날 받은 부인의 뇌수술 결과에 대해 이야기했다. UCLA 신경외과에서 8시간동안 받은 수술이 성공적으로 되었고, 오늘 아침엔 모든 것이 정상인 듯하다고 그는 기뻐했다. 감사드린다고 했다. 아마도 하늘 높이 계신분에 대한 감사이리라.

어렵게 그러나 다행히 빨리 스케줄 잡힌 UCLA 신경외과 수술을 며칠 앞두고 그들 부부가 오피스를 찾아왔었다. 수술을 안 받을까도 생각 한다고 했다. “뇌수술을 받으면 손톱에 봉선화 꽃물도 안 들 정도로 몸의 체질이 변화 한다”는 한 이웃의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이 없다는 것이다.


이 말을 전해 듣는 순간, 이 준수한 외모의 중년 환자가 여자였었지…하고 새삼스레 느껴졌다. 어떤 상황에서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여자의 아름다워짐…난 그것을 기억하며 의자를 가까이 당기고 수술을 받아야 하는 의학적인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30년간 환자를 대하면서 한 번도 수술 후 봉선화 물이 손톱에 들지 않는다는 말을 들어보지도 또, 본적도 없다고 했다. 그런 이웃의 충고가 진정으로 당신을 위하는 말인지, 또는 그 말이 행동도 같이 동반된 권유였는지도 생각해보라고 했다. 충고와 함께 손톱에 바르는 매니큐어라도 들고 왔는지, 아니면 힘든데 영양보충이라도 하라며 본인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귀중한 돈 얼마라도 손에 쥐어 주었냐고 물었다. 아니라면 그 말보다, 전문지식과 경험이 있는 의사의 확실한 말만 받아들이고 결정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긴 대화를 뒤로하고 떠나면서 그들은 수술 성공을 위해 기도를 부탁한다는 말을 남겼다.

힘든 상황에 처한 환자들은 황량한 벌판에 서있는 촛불 같은 연약하고 가냘프다. 이때, 어느 방향에서든 바람이 불면 초의 불꽃은 마냥 흔들거리다 꺼져버릴 수도 있다. 보통 환자들에겐 결과에 대한 장래 확신과 보장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불안, 초조, 의심이 마음속을 수십번 오가게 된다. 그래서 주위 사람이 무심코 일으키는 가벼운 바람도 환자에게는 커다란 영향을, 그리고 피해를 가져오는 경우를 종종 본다.

항간에, 밥 먹을 때 외에는 입을 열지 말라고 한다. 사람 많은 LA는 특히 그렇다. 물고기는 바늘에 입이 걸려 져 낚시꾼에게 건져 올려 진다고 한다. 많은 말들은 피 속에서 태어나고, 어둠속에서 자라며, 입술과 입을 통해 날개 치며 비상한다. 그런 날개 짓이 바람을 일으키고 촛불을 흔드는 것이다.

말이 천냥 빚을 갚는다고 하지만 그 여파로 만냥의 손해를 끼칠 수도 있다. 성경속의 욥을 병문안 온 친지, 이웃들의 말도 욥의 평안을 위한 진심어린 위로이기 보다는 자신들의 박식함을 과시하는 심판이었다. 병문안 와서 환자에게 충고나 정보를 줄 때에는 꼭 만인에게 100% 확인된 것만 주었으면 한다. 이것이 진정 촛불 같은 환자에 대한 배려이다. 위로와 평안을 주는 것은 기본이다.

뇌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친 그 환자가 완전히 회복된 후 다시 오피스로 찾아와 고운 봉선화 꽃물 들인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할 날을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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