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누가 ‘미들맨’인가

2013-10-03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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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아리

▶ 다양한 분야 창조적으로 연결해 새로운 가치 창출 대통령 리더십 보좌할 ‘정치권 믿을 맨’ 절실하다

가을 취업시즌이 돌아오면서 곳곳에서 아우성이다. 삼성그룹 하반기 신입사원 공개채용엔 취업지원자가 역대 최대인 10만명이 몰려 고사장 확보조차 어려울 지경이다. 지원자 폭주로 온라인 접수시스템이 마비된 곳도 허다하다. 구직자들의 심정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기업들의 속사정은 더욱 복잡하다. 지원자들의 스펙은 화려해지고 있지만 자신들이 원하는 인재는 찾기 어렵다고 한다. 기업은 어디서 어떤 지식을 습득했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가치를 창출하고, 회사가 원하는 것을 위해 어떤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가 관심이다. 가치창출 역량과 문제해결 능력이 취업의 조건인 셈이다.

가치창출은 경제학의 중요한 개념 중 하나다. 창조경제 시대엔 더욱 그렇다. 인재의 덕목이면서 개인의 브랜드이기도 하다. 대니얼 앨트먼 미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 교수는 자신의 저서 <10년 후 미래(Outrageous Fortune 세계 경제의 운명을 바꿀 12가지 트렌드)>에서 미래의 인재상으로 창조적 ‘미들 맨(middle man)’을 꼽았다. 앨트먼 교수는 정보기술(IT) 발전으로 국경 장벽이 사라진 지구촌 경제체제에서 두 가지 이상의 분야나 지역 시장을 깊이 이해하고 이를 창조적으로 연결해 새로운 가치창출을 이끌어 내는 혁신적 인재를 그렇게 정의한다. 야구에서도 선발과 마무리 투수를 잇는 계투요원인 미들 맨은 게임 흐름을 좌우하는 만큼 승리의 관문을 지키는 게이트키퍼(gatekeeper)로 통한다. 미들 맨을 ‘믿을 맨’으로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래의 인재상 미들 맨은 어떤 존재인가. 대표적 인물은 중국 최대의 전자상거래회사 알리바바닷컴 마윈(馬雲)회장이다. 세계 최대의 온라인 B2B시장을 만든 그는 영어를 사용하는 글로벌 기업 구매자와 중국 개별 판매 제조자를 저렴한 비용으로 연결시켜 주는 단순 중개상을 넘어 중국 제조업을 240여개 해외시장에 개방한 ‘메이드 인 차이나’ 물류센터 역할을 한다.


미들 맨은 기업 엔지니어들이 해외 고객들의 취향이나 요구에 맞게 제품을 변형해 주는 일을 돕기도 한다. 자국과 다른 ‘게임의 법칙’이 적용되는 곳에서 비즈니스 활동을 지원하는 해결사 역할도 한다. 현지의 변호사, 은행가, 컨설턴트, 회계사, 부동산 중개인, 로비스트 등이 그들이다. CNN뉴스를 웹사이트에서 한국어로 번역하는 통역사나 해외 유명브랜드 의류를 현지 문화에 맞게 변형해 주는 디자이너도 여기에 속한다. 좋은 한류문화 콘텐츠를 다른 시장을 타깃으로 맞춤 제작해 어디에 팔지를 결정하는 필터 역할도 미들 맨의 몫이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그 중요성은 한층 커진다. 우리나라 벤처기업들은 실리콘밸리에서 기술력 보다 우량기업의 씨앗을 나무로 키워 내는 그들의 창업환경을 더 부러워한다. 실리콘밸리의 성공 요인을 미들 맨의 역할에서 찾기까지 한다. 창업자나 언론인 출신의 미들 맨들이 자신의 노하우와 인맥을 기반으로 창업가를 발굴, 투자자와 연결해 주는 역할을 한다. 단순히 소개비나 챙기는 중개상이 아니라 유기적이고 융복합적인 사고와 협상력을 통해 새 시장을 개척하고 신 소비층을 창출하는 미들 맨은 미래의 유망 직종이 아닐 수 없다.

경제분야 못지않게 미들 맨의 역할이 필요한 곳은 우리의 정치분야가 아닌가 싶다. 등산용어로 미들 맨은 험난한 코스를 등반할 때 대장을 돕는 조력자를 일컫는다. 우선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보좌하고 분산된 업무를 조화롭게 이끄는 청와대 비서실장이나 수석비서관, 특정분야 장관 등이 미들 맨의 범주에 속할 것이다. 나아가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대통령이 정치적 리더십을 펼치게 설득할 수 있는 측근 정치인도 소중한 미들 맨이 아닐 수 없다. 지금과 같이 여야·노사·계층·세대 사이의 갈등이 첨예하고 국민과의 소통과 타협이 시급한 시점일수록 정치권의 미들 맨 역할이 절실해 보인다.


<장학만 논설위원 loca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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