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체인’과 북핵 억지
2013-10-03 (목)
북한의 연이은 장거리 로켓발사와 핵실험으로 촉발된 무기개발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국군의 날 행사에 북한의 핵심 시설을 타격할 수 있는 사거리 300㎞ 탄도미사일‘현무-Ⅱ’와 사거리 1,000㎞ 순항미사일‘현무-Ⅲ’이 처음 공개됐다. 박근혜 대통령은 기념사에서“‘킬 체인’(Kill Chain)과 한국형미사일방어체계(KAMD) 등 핵과 대량살상무기(WMD) 대응능력을 조기에 확보, 북한 정권이 집착하는 핵과 미사일이 더 이상 쓸모 없다는 것을 스스로 인식하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 대통령이 북한 핵과 미사일 등 WMD를 무력화할 수 있는 대응능력을 조기에 확보할 것을 공언한 것은 협상을 통한 북핵문제 해결이 쉽지 않다는 전제를 깔고 억지력 확보에 주력하겠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2월 12일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국제사회는 안보리 제재결의 2094호에 따라 대북제재를 강화하면서 비핵화와 관련한 진정성 있는 북한의 행동을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은 전제조건 없는 6자회담 재개를 주장하면서 핵보유국의 지위를 강화하기 위한 조치들을 취하고 있다.
북한은 지난해 4월에 수정·보충한 사회주의헌법 서문에‘핵보유국’임을 명시한 이후 올 3월에 열린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의 병진노선을 채택했다. 북한은 4월 1일에 열린 최고인민회의에서‘자위적 핵보유국의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할 데 대하여’란 법령을 제정했다. 김정은 집권 이후 39년 만에 개정한‘당의 유일적 영도체계 확립의 10대원칙’에도‘핵무력을 중추로 하는 무적의 군사력’이라는 내용을 추가했다.
북한을 움직이는 통치원리의 핵심인‘10대원칙’과 당의 기본노선, 그리고 국가헌법과 법률에‘핵보유국’의 지위를 명문화한 북한이 당분간 핵무기를 포기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북한이 내부적으로 핵보유국의 지위를 명문화해 놓고 김정은 정권의 정당성 확보에 활용하고 있기 때문에 김일성 주석의 한반도 비핵화 유훈은 사실상 폐기됐다고 봐야 할 것이다.
김정은 체제의 존립기반은 지도자의 권위를 절대화한 수령체제와 핵과 미사일을 앞세운 군사국가라고 할 수 있다. 20대 후반의 젊은 지도자가 권력을 공고히 하고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선대 수령들이 만들어 놓은 통치시스템과 대량살상무기에 의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최근 북한과 중국은 6자회담 재개를 희망하지만 한국과 미국은 핵무기개발과 장거리미사일(로켓) 개발 중단과 국제원자력기구(IAEA) 감시 수용 등 이른바‘2·29합의+α’를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은‘조선반도를 비핵화하는 것은 공화국정부의 시종일관한 입장’이라고 하면서‘군축을 통하여 세계의 비핵화를 실현’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과거 북한이 한반도 비핵화가 김일성의 유훈이라고 할 때는 미국이 한반도에 핵무기 배치를 하지 않고 핵위협을 하지 않으며 북미 적대관계가 해소되면 북한도 핵무기 개발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의 북한은 핵보유국으로서의 지위를 가지고 핵군축을 하자는 입장이고 한반도 비핵화는 세계의 비핵화와 함께 실현될 수 있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미국이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는 한 북한도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중국의 압력과 설득으로 북한이 전제조건 없이 6자회담에 나오겠다고 하지만 북한의 비핵화문제는 훨씬 복잡해졌다.
북한이 3차 핵실험 이후 핵보유국의 지위를 내세우고 군축차원의 비핵화 협상을 주장하자 한국과 미국은 6자회담의 유용성에 의문을 품고 제재를 강화하면서 선 비핵화 행동을 요구하고 있다. 강화된 제재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핵능력은 향상되고 있다. 박 대통령의 킬 체인을 통한 북핵 무력화 주장이 대화를 통한 북핵 해결 노력의 포기가 아니길 바란다. 당장 핵폐기가 어렵다고 하더라도 핵무기가 늘어나는 것을 막는 협상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