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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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인의 진퇴

2013-10-03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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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평선

나랏일을 맡아 국난(國難)이 닥치면 험난한 가시밭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기꺼이 형극의 길을 마다하지 않았던 큰 인물들의 아름다움은 결국 소명 앞에서 개인적인 남루와 수치를 묵묵히 감당해 냈던 것 아닌가 싶다. 충무공을 봐도 그렇다. 망국의 위기 속에서 유일하게 불세출의 전승을 거둔 장군에게 돌아간 건 굴욕스런 형장과 백의종군뿐이었다. 하지만 그 절대고독 속에서 장군이 올린 상소는“아직 12척의 전선이 남았고, 신은 죽을 힘을 다해 싸우겠다”는 비장한 각오였다.

병자호란 때의 명신 최명길도 나라와 백성을 위해 기꺼이 굴욕을 감당했다. 남한산성까지 몰린 상황에서도 대다수 관료, 선비들은 주화론자인 최명길을 오랑캐에게 나라 팔아먹자는 소인배로 몰아세울 뿐 이었다. 척화론자 김상헌은 마침내 그가 지은 강화국서를 찢어 버리고 통곡했다. 그러자 그는“어찌 대감을 옳지 않다 하겠소. 그러나 나는 이것을 다시 주워 붙여야 합니다”라며 기꺼이 욕을 벌었다.

소신과 달리 행동할 수밖에 없는 딱한 상황을 묵묵히 감당한 큰 인물의 인상적인 사례는 이웃 일본의 역사에도 등장한다. 태평양전쟁 당시 연합함대 사령관이었던 야마모토 이소로쿠 제독은 일찍이 미국과의 전쟁을 피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자신의 전략적 판단을 무시한 채 진주만 공격령이 일단 떨어지자 두말 없이 진지하게 임무를 수행한다. 영화 <도라 도라 도라>에서 진주만 공습 성공 직후 “잠자는 거인을 깨워 끔찍한 결과를 낳을 것이 나는 두렵다”는 그의 독백은 소명에 복무해야만 하는 공인(公人)의 비애를 얼핏 드러낸다.


진영 전 장관의‘항명파동’을 보면서 공인의 자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노인연금을 국민연금에 연계하는 방식에 무리가 없지 않기 때문에, 소신을 위해 장관직을 버린‘결단’을 인정할 여지도 있지 않나 곰곰이 짚어 봤다. 하지만 어떤 방정식을 적용해 봐도 납득이 안 된다. 특히“국회로 돌아가 박근혜정부의 성공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식의 변은 알량한 개인적 타산으로 밖에는 읽히지 않는다. 참 희한한 사람이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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