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역사치매에 맞선 기억싸움

2013-10-02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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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의 현장

사람은 일상은 끊임없는 기억 싸움의 연속이다. 자기 자신과 벌이는 기억싸움, 상대방과 벌이는 기억 싸움의 연속이 바로 우리의 일상이며 삶이다. 지나온 시간에 대한 기억이 바로 현재의 자신, 타인과의 관계를 규정해서다. 공유했던 기억이 망각되고 왜곡될 때 타인과의 관계는 파괴된다. 지난 시간의 궤적을 기억하지 못하게 되는 ‘치매’를 우리가 세상에서 가장 서글픈 병이라 부르는 이유다.

국가나 사회에서도 기억 싸움이 벌어진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회의 구성원이 지난 과거의 기억을 공유할 때 사회적 통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 국가나 사회가 역사 기술을 놓고 첨예한 기억 싸움을 벌이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역사 역시 동시대를 살아가는 국가와 사회의 구성원들이 망각에 맞서 벌이는 기억싸움이며 과거 사실들에 대해 한 집단의 구성원들이 함께 공유하고 기억하는 것이 바로 역사이기 때문이다.

역사는 한 집단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기억이자 이를 위한 기억싸움의 과정이어서다.


하지만, 문제는 과거 사실에 대한 기억 공유하는 과정이 그리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자신의 처지와 기준에 따라 기억하는 과거가 달라 이는 갈등의 단초가 되기도 하며 국가 간에서 전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군국주의 일본의 과거사를 놓고 벌이는 한국과 일본의 갈등도 바로 이 기억싸움에서 비롯된다. 최근 글렌데일 중앙도서관 앞에 마침내 세워 진 위안부 기림 평화의 소녀상 건립 과정 역시 위안부라는 과거 사실을 놓고 벌어진 기억싸움의 한 예를 보여준다. ‘역사 치매’에 걸린 듯 100년도 채 되지 않는 과거사를 망각하고 뒤틀려는 일본의 방해에 맞선 한인사회가 기억싸움을 벌여 거둔 소박하고 작은 승리가 바로 소녀상이었다.

한인사회가 일본과 맞서 위안부 역사를 놓고 벌인 기억싸움에서 보듯 역사는 기억을 지우려하거나 뒤틀려는 세력과 기억 싸움을 멈추지 않아야 지켜낼 수 있으나 이 기억 싸움을 멈출 때 한 사회나 국가는 더 이상 공통의 기억을 가질 수 없게 되며 이렇게 되면 더 이상 하나의 사회나 국가로 통합될 수 없어 불신과 증오, 갈등과 대립이 격렬해진다.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고등학교 교과서를 둘러싼 기억싸움은 위험천만하기 짝이 없다. 이 싸움이 위험천만한 것은 사회구성원들이 합의한 공통의 기억을 소위 ‘뉴라이트’로 불리는 특정세력이 뜯어고치려 하고 있어서다. 마치 역사 치매에 걸린 일본처럼 말이다..

글렌데일에 세워진 위안부 소녀상이 LA에서 치매 걸린 일본의 범죄를 입증하는 공통의 기억이 된 것처럼 한 국가의 구성원들이 공유한 공통의 기억이 그 나라의 헌법에 오롯이 새겨져 역사의 증거가 된다.

위안부 소녀상을 부정하는 일본이 역사의 치매이듯 헌법에 새겨진 3.1운동과 임시정부의 법통, 4.19 민주이념, 민주개혁과 평화통일 정신을 부정하고 ‘식민지근대화론’을 들먹이는 이들은 치매 걸린 일본과 다르지 않다. 교과서가 특정 정파의 신분세탁 도구로 전락할 수는 없다.


<김상목 사회부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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