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양대 의전원 박모씨에게

2013-10-02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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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국에서

한양대가 박문일 의대 학장 겸 의학전문대학원장이 연루된 연구부정과 입시비리 의혹으로 시끄럽다. 아직 연구진실성위원회가 진상을 조사하진 않았지만 감사위원회는 박 학장의 연구부정이 의심된다며 30일 총장에 보직 해임을 건의했다. 감사위의 조치는 그만큼 증거가 확연해서다.

박 학장이 교신저자로 참여한 아들의 과학논문인용색인(SCI)급 해외 학술지 논문과, 지도교수로 참여한 산부인과 개업의 A씨의 박사학위 논문은 일반인이 봐도 제목과 내용이 그대로 일치함을 알 수 있다. 하지만 SCI 논문에는 A씨 이름 없이 아들 박씨만 제1저자로 올라 있으니, 박 학장에게 의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박씨는 2012학년도 한양대 의학전문대학원 입시전형에 가로챈 논문을 제출해 입학한 것이어서 부정입학 가능성이 제기됐다. 박 학장은 자신의 보직을 이용해 입시전형마저 아들에게 유리하게 바꿨다는 의심까지 받고 있다.

한양대 의대는 2005년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의 줄기세포 논문 조작 사태의 또 다른 당사자였다. 지금은 철회된 황 박사의 사이언스 논문 두 편에 한양대 의대 교수, 이 대학 출신 연구원들이 공저자로 참여해 논문 조작에 간여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때 난자를 사용한 줄기세포 연구의 윤리문제를 검토하고 승인한 곳이 한양대 의대 기관윤리심사위원회(IRB)였고, 당시 위원장이 바로 박문일 학장이었다.


이런 전사(前史)를 돌이켜보면 절로 한탄이 나올지 모르겠다. 그렇게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고, 연구윤리 기준을 강화한다고 난리 법석을 떨었으면서 왜 아직도 이 모양이냐고.

사실상 연구실적에 눈이 먼 젊은 연구원이 아닌, 대학 업무를 관장하고 유명세도 있는 보직 교수가 얽혀 있다는 점에서 이 사건은 충격적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충격적인 대목은 따로 있다. 박사학위 논문을 쓴 A씨가 “개업의에게 논문은 중요하지 않으니 논문에 도움을 준 교수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도록 이름을 빼달라”고 극구 사양해 A씨 이름을 뺐다는 박 학장의 소명이다. A씨가 진짜 이렇게 말했는지 여부와는 별개로, 박 학장의 해명은 의사 사회에서 논문을 필요에 따라 주고받을 수 있다고 여기는 관행을 그대로 내비치고 있다.

황우석 사태를 거치며 우리 학계는 분명 달라졌다. 과거 윤리기준이 모호하거나 관행으로 여겨 눈감던 행위들을 이제는 부정으로 명시하고 있다. 또 그런 행위에 대한 경각심도 높아져 적발과 처벌로 이어지는 일이 잦다. 다만 이런 변화가 모든 분야에서 같은 속도로 진행되지는 않고 있다. 특히 연구보다 임상진료를 본업으로 삼는 의사 사회에서는 여전히 연구윤리를 장식품 정도로 여기는 불감증이 심각하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 학위를 따고 의사가 되고 교수가 된들 무슨 의미가 있는지 묻고 싶다. 윤리에 무감한 한 대학병원 의사는 돈을 받고 여대생 청부살해 주범에게 허위 진단서를 끊어 주었다가 구속됐다. 또다른 의사는 병원에서 내연녀에게 수면유도제를 과다 투여하고 성관계를 맺었다가 사망에 이르게 해 징역형을 살고 있다.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직업이거나 높은 지위에 올라도 희미한 윤리의식 때문에 그릇된 판단을 한다면 한순간 범죄자로 전락할 뿐이다.

한국일보가 단독 보도한 이 사건을 지켜보면서 박 학장의 아들이 마음에 걸리지 않을 수 없다. 박씨에게, 인생의 위기를 진솔하게 감당하고 헤쳐 나가길 권한다. 그의 의학전문대학원 입학이 유효한지 여부는 연구진실성위원회의 조사 결과를 기다려 봐야 한다. 그러나 의학 경력의 시작이 이미 부정과 의혹으로 얼룩져 있음을 자각하고, 아버지의 힘으로 자리를 얻는 것을 당연시하지 않기를 바란다. 무엇이 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한 가치임을 인식하길 바란다. 위기를 교훈으로 삼는다면 그에겐 값진 인생이 남게 될 것이다.


<김희원 사회부 부장대우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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