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쉬어가는 시간

2013-09-16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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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예리 / 보건복지사

우리들이 어릴 적 한번쯤 접했을 동화책 중 하나가 프랜시스 버넷이 집필한 ‘소공녀’이다. 이 책의 주인공 세라는 순수하고 정의감이 강한 소녀인데, 그녀가 좋아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상상의 날개를 펼칠 수 있는 공상의 세계로 빠져드는 것이었다. 아버지의 사랑 속에서 살았을 땐 동심을 맘껏 펼치는 매개체였고, 빈털터리 고아가 되었을 때는 서글픈 현실을 버티기 위한 방법으로 바뀌었다.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항상 상상 속에서 사는 것은 큰 문제이겠지만, 워낙 숨 가쁘게 흘러가는 요즘 세상에선 하루에 몇 분씩이라도 현실에서 벗어나 머릿속을 전혀 다른 생각이나 즐거운 상상으로 채우며 쉬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나는 출퇴근할 때 공상을 자주 한다. 예전 추억을 떠올려보기도 하고, 재밌는 이야기도 생각해보고, 또 어떨 땐 머릿속을 비우듯 잡념을 털어내기도 한다. 내가 떠안고 있는 업무, 책임, 걱정거리서 잠시라도 벗어나 내 마음을 쉬게 해주는 것인데, 그렇게 하고 나면 꼭 길고긴 운동 중 큰 심호흡을 한 것처럼 마음이 살짝 가뿐해지기도 한다.

“마음 비운다는 게 어디 쉽나, 가만히 있으면 온갖 생각이 떠올라서 시끄럽지”라고 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내 생각엔 ‘마음을 비운다’는 의미 자체에 오해가 있어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다. 마음을 비운다는 건 꼭 ‘무’의 경지에 가는 것이 아니라, 나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들을 정리하고 조금씩 털어내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꼭 조용한 방에 특정한 자세로 앉아서 명상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 바쁜 하루 속 틈을 찾아 단 몇 분이라도 번잡한 생각들에서 벗어나는 게 마음을 쉬게 해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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