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바나나가 아주 싸고 흔하지만, 내가 어릴 적엔 일 년에 한두 번 먹어볼까 말까 한 귀한 과일이었다. 그런데 이런 바나나에는 비밀이 하나 있다.
19세기 말, 바나나는 미국에서도 사치품으로 여길 만큼 귀했다. 바나나에 대한 수요가 늘자 더 싸고 많은 바나나를 얻기 위해 중미의 여러 나라들이 열대 우림을 밀어내고 대규모 농장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재배하기로 결정된 품종은 전 세계 400여 종의 바나나 가운데 단 하나, 단단해서 운송이 용이하고 맛도 좋은 Gros Michel이었다.
단일 품종을 대량 생산할 경우 유전적 다양성이 없어 환경변화에 적응이 어렵고 자칫 잘못하면 멸종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제기되었지만, 기업들은 이를 외면했다. 그런데 ‘바나나 암’으로 불리는 치명적인 전염병인 파나마병이 퍼지면서 결국 1960년대 바나나 재배는 중단 위기에 이르렀다. 이때 구세주처럼 나타난 것이 현재 우리가 먹고 있는 Cavendish라는 품종이다. 이는 Gros Michel보다 맛과 상품성은 떨어지지만 이 병에 저항성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인간의 힘으로 자연의 이치를 거스를 수는 없는 법. 변종 파나마병이 유행하면서 또 다른 재앙이 닥쳤다. 1980년대 대만에서 재배되던 Cavendish의 70%가 사멸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아무리 유전조건이 우수한 식물이라도 종의 다양성이 없을 경우 멸종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
기업의 이윤 추구를 위해 행해지고 있는 식량의 대량생산과 유통은 이처럼 식물의 품종까지 기형적인 구조로 바꾸어 놓았다. 이처럼 우리가 마켓에서 마주하는 먹거리의 이면에는 자연의 섭리를 외면한 채 경제 논리로 포장된 기업가들의 이기심과 그로 인해 신음하는 자연의 탄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