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삶이 삶을 이끌어 간다

2013-08-10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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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수자 조각가

가위 눌린 잠에서 깨어 창문을 여니 젖은 하늘과 회색의 대기가 밀려든다. 음산한 분위기에 맞게 쇼팽의 장송행진곡을 크게 틀어놓고 가위 눌린 꿈을 생각한다. 나태해진 마음과 한껏 느슨해진 정신의 줄들은 기운 없이 늘어져 제 소리들을 내지 못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언제부터인가 하늘을 보지 못하고 나무를 느끼지 못하고 대기의 냄새를 알아내지 못한 채 지내왔던 것이다. 그것이 언제였던가. 꽃의 웃음을 알아보고 나무의 수액이 차오르는 광경을 기쁨에 들떠 바라보고 산과 들이 내게 전하는 말들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이.

젊은 시절의 미친듯한 열정이 아니더라도 나태한 삶을 이끌어갈 어떤 강렬한 원동력이 아쉽다. 부의 축적, 명예의 추구, 이성에 대한 사랑 따위라 할지라도 삶을 이끄는 원동력이 된다면 순수한 것이다.


그러나 이 나이에 부를 이야기하자면 대궐 같은 집, 번쩍이는 다이아몬드가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정도를 의미할 것이고 명예를 이야기하자면 의사 검사 교수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존경받는 인품을 의미할 것이며 사랑에 대해 말하자면 밀고 당기며 애태우는 사랑놀이가 아니라 멀리서 따스한 미소로 바라보아 주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그러니 그것들 또한 이 나이의 삶을 이끌 만한 것들은 아닐 터이다.

작품에 대한 열정은 또 어떠한가. 소통 없는 작품은 애물단지에 불과하다. 항상 순전한 마음을 간직하기란 얼마나 힘든 것인가. 작품 아래 욕심의 덩어리가 포도송이처럼 열려 있다. 아직도 난 진정한 예술인이 아니다. 차라리 다른 것에서 이름을 구한다면 이보단 떳떳하리라.

그렇다면 이제껏 내 삶을 이끌어 왔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작품에 대한 열정, 자식과 가족에 대한 헌신, 아마 이런 것들일 거라 믿어왔다. 그런데 이제 와 돌아보니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삶이 그 모든 걸 끌어안고 나를 주인공 삼아 스스로 삶을 이끌어 온 듯싶다.

이제 60 문턱에서 내게 남은 게 무언가를 생각하니 사회적으론 이룬 것도 이바지한 것도 없다. 개인적으로 명예나 부도 따라주지 않았다. 이기적으로 살지는 않은 것 같은데 오랜 은둔 탓에 친구도 별로 만들지 못했다.

그러나 대신 남에게 별로 쓸모가 없는 사람이 보다 자유로울 수 있음을 터득하였고 또한 끈질기게 붙들고 있던 것들을 놓아버림으로써 고통에서 벗어남을 알게 되었다. 내가 지금까지 추구했던 것들, 지키려 애썼던 것들로 하여 이제까지의 삶이 살아졌음이 틀림없지만 그래서 그 삶이 아프고 고달팠던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런데 그 삶이 내게 일러주는 것은 그 불행들조차 극히 자연스럽고 조화로운 일이라는 것이다.

다만 내가 거기 작은 나의 의도를 보탠다면 짜릿한 소다수보다는 차 한 잔의 은은함을 즐기고, 비를 맞으며 거리를 걷기보다는 창밖 비 내리는 거리를 바라볼 것이다. 여럿 가운데 속하여 떠들썩하기보단 혼자가 되기를 즐겨할 것이며 앞자리의 화려함보단 뒷자리의 조용한 양보를 택할 것이다. 그리고 내 이름 석 자를 알아보는 사람들과의 만남도 좋지만 그보다는 자주 강둑에 앉아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강물이 흘러가는 이치를 배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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