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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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쓰는 마음

2013-07-22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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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희 / 샌프란시스코

이창동 감독의 ‘시’란 영화가 있다. 양미자라는 할머니가 문화센터에서 시문학 수업을 받는 이야기와 여학생을 성폭행해서 자살하게 만든 소년들의 부모들이 사건을 합의해 가는 이야기가 주된 뼈대다.

주인공인 미자 할머니는 성폭행에 가담한 아이들 중 하나인 손자를 재혼한 딸 대신 키우고 있다. 할머니는 시 창작 수업을 듣지만 시 한 줄 쓰기도 벅차해 하고, 죽은 소녀에 대해서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손자를 이해할 수 없다. 소년들 부모는 돈을 모아서 죽은 소녀의 엄마에게 합의금을 주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학교에서는 사건이 세상에 알려질까 봐 쉬쉬하고, 죽은 여학생의 엄마도 돈 앞에서 딸을 잃은 슬픔을 덮으려고 한다. 아무도 죽은 여학생이 느꼈을 고통과 외로움, 절망에 대해선 보려고 하지 않는다.

할머니는 시 수업을 통해서 시가 어떻게 세상 모든 존재와 교감하는지 알아가고 결국 죽은 여학생의 슬픔을 온전하게 느끼게 된다. 사랑하는 손자의 미래와 소녀가 받았을 고통 사이에서 고민하던 할머니는 손자를 경찰서로 보낸 후 죽은 소녀의 마음을 담은 시 한 편을 남긴 뒤 사라지듯 생을 마감한다. 시가 길어 올린 마음을 통해 인간에 대한, 존재에 대한 깊은 이해와 사랑을 할 수 있었다고 영화는 말한다.


최근 한국 뉴스에서 19세 소년이 17세 소녀를 말로 하기 어려울 만큼 끔찍하게 살해했다는 보도를 접했다. 그 소년이 괴물이 될 때까지 이 사회가 커다란 숙주가 되어 준 것은 아닐까 하는 참담한 생각이 들었다. 시를 쓰려던 미자 할머니같이 존재 자체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더 많았더라면 사회가 이 지경까진 오지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에선가 또 다른 괴물이 자라지 않도록 할 수 있는 방법은 우리 모두가 시 하나쯤 노래할 수 있는 마음을 키우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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