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20일 ‘US 아마추어 퍼블릭 링스’ 퀄리파잉 대회가 열렸던 롱아일랜드 베스페이지 골프클럽 블루코스. 왜소한 체구의 남학생이 36번째 마지막 그린지역에 꼿꼿이 서서 조용히 호흡을 고르고 있다. 한참 동안 홀컵을 응시하며 서있던 이 남학생은 이내 허리를 굽혀 퍼팅을 시도한다. 그리고 눈 깜짝할 새 퍼팅한 볼은 홀 컵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이를 지켜보던 주위의 갤러리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지른다.
롱아일랜드 뉴하이드팍 메모리얼 고교에 재학 중인 크리스 염(16) 군이 미국 아마추어 골프대회 가운데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US 아마추어 퍼블릭 링스 대회 출전권을 확보하는 순간이었다. 미 동부지역은 물론 미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아마추어 골프선수 수백 명이 참가한 이번 대회에서 앳된 얼굴의 고교생이 공동 1등과 1타 뒤진 143타로 3위에 오르며 당당히 출전티켓을 따내자 대회 참가자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뉴욕과 뉴저지 일원에서 대학생 이상 선수가 아닌 한인 고교생이 이처럼 ‘US 아마추어 퍼블릭링스’ 출전권을 획득한 것은 염군이 처음.
행사를 주관했던 대회 관계자들도 “정교한 기술은 물론 강한 정신력이 큰 장점”이라며 ‘미래 PGA에서 활약할 프로선수 감’이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염 군이 골프에 처음 입문하게 된 것은 초등학교 시절 9살 때. 골프 매니아인 아버지를 따라 나간 골프 연습장에서 처음 클럽을 잡은 후 골프 재미(?)에 흠뻑 빠져 버린 게 동기가 됐다.
염군의 아버지 염동호 씨는 "어릴 적부터 축구에 재능이 있어 축구클럽에 다녔는데 어느 날 함께 갔던 골프장에서 흥미를 느끼는 것 같아 치게 했더니 금새 흥미를 보이더라구요. 골프채를 잡은 지 얼마 안 돼 어른 뺨치는 폼으로 샷도 날리고… 소질이 제법 있는 것 같아 티칭프로에게 정식으로 배울 수 있도록 해줬어요"라고 말했다.
그동안 지역 대회 석권은 물론 미동부에서 손꼽는 각종 주니어 대회에서 여러 차례 우승을 차지했을 정도로 이미 남자 주니어 골프계에서는 유명선수가 된 지 오래다.
지난 2011년에는 여름방학기간 미동북부 지역에서 열린 수십개의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선수들끼리 챔피언을 가리는 MET PGA 주최 토너먼트 오브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특히 지난달 뉴욕한인골프협회와 한국일보가 공동 주최한 제1회 한인단체대항 골프대회에 뉴욕한인축구협회 멤버로 출전해 참가 선수들 중 최연소 나이로 메달리스트의 영예를 거머쥔 바 있다. 염군의 장기는 드라이버와 칩샷. 드라이브 샷 비거리는 280야드 정도로 상대적으로 길지 않은 편이지만 프로선수 못지않을 정도의 안정적인 정확도를 자랑하고 있다. 게다가 칩샷과 퍼팅 등 숏게임에도 강해 점수 관리 능력도 높다는 평이다.
염군을 지도하고 있는 이창식 티칭프로는 “어렸을 때부터 잘 단련돼 다른 여느 선수와는 달리 정확한 기술을 구사하고 있을 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로부터 ‘연습벌레’란 별명을 얻을 정도로 열심히 노력하는 스타일이라서 장래가 매우 촉망 된다”며 “앞으로 더 큰 대회에서 경기 진행 능력만 키운다면 세계 정상급 선수로 성장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염 군은 요즘 방학 와 중에도 거의 매일 뉴하이드팍 스프링락 골프레인지에 어김없이 나가 강훈련을 받고 있다. “골프의 묘미는 뭐니 뭐니해 하도 강한 정신력으로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 낼 때의 기쁨”이라고 말하는 염 군은 “이 다음에 타이거 우즈나 최경주와 같은 세계 정상의 프로골퍼가 되고 싶다”며 장래 희망을 내비쳤다.
염 군은 “오는 15일 개막되는 US 아마추어 퍼블릭 링스 대회에서는 큰 욕심 내지 않고 저의 기량을 시험해보는 무대로 삼고 싶다.”며 뉴욕과 뉴저지의 한인 골프팬들의 많은 성원을 당부했다.<김노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