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젊은 노병

2013-07-06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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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병찬 / 워싱턴

불태웠던 친구가 “앞으로 70십이 되면 멋진 자서전을 출간하여 너 먼저 보여 줄 것이니 기대해도 좋다”고 큰소리 치길래 “참 싱겁기도 하네”라며 대수롭지 않게 그냥 웃음으로 넘겨 버렸다. 그러나 친구 말을 곰곰이 되씹어보면서 우리가 어느덧 그런 연륜으로 접어들고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됐다.

내가 혜택을 받아오던 메디케이드에 문제가 생겨서 고민하던 차에 메디케어나 메디케이드를 안내해 주는 소셜워커를 만나 이분 도움으로 문제가 잘 풀리게 됐다. 다행히도 한국계 미국 시민권자라 너무 좋았다.

그녀가 일하고 있는 빌딩 안에는 55세 이상이면 누구나 참가할 수 있다는 모임이 있다. 친구가 자서전을 언급하고 나이에 대해 생각해보던 때라 나도 모르게 그곳에 회원으로 가입하고 3주 정도 참석하고 있다.


그 모임은 매주 한 번 월요일 오후 1시부터 4시까지다. 회원 간의 정겨운 만남으로 친목을 도모하고, 취미 활동도 각자 선택하여 영어 강의를 듣기도 하고 춤을 배우거나 컴퓨터도 배우고 있다. 잉여의 삶을 여유로운 마음으로 보내서들 그런지 모두가 행복하고 웃음 짓는 얼굴들이다. 남녀회원 평균 연령은 거의 73세 이상 된다고 하는데, 나이에 상관없이 언제나 젊음을 간직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동안 우매하고 힘없고 초라한 노년층으로만 치부했던 내 자신을 후회하면서 자신을 꾸짖고 있다. 훌륭한 이 구성원의 모임을 통하여 이들로부터 기본적인 인격과 덕성을 쌓는 공부를 하면서 나의 삶을 뜻 깊게 살아가고 싶다.

시니어들 중에 칠십이 넘어서도 현지에서 빛나는 삶을 영유하는 사람들을 보았는데 그 중에 워싱턴DC에 있는 연방의사당에서 자원봉사에 보람을 느끼면서 새로운 젊음을 다시 맛본다는 어르신과 세계은행에서 정년퇴임해서 지금은 국가 통역관으로 젊은이 못지않게 자신의 삶을 태우는 한국이 낳은 자랑스러운 할머니도 있다. 이들 모두가 노년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아쉬운 생각이 든다.

아동문학가이며 목사인 최요섭은 “슬기로운 노인은 자기의 나이에 매어 살지 않는다. 나이를 잊어버리는 지혜를 터득한다. 이 말은 의미에 살고 세월에 살지 않는다는 뜻이다”라고 지적 했다. 내가 만났고 만나고 있는 노인 분들은 한결같이 자신의 나이에 의미를 두지 않고 활력 넘치는 삶을 살아간다.

내가 몸담고 있는 문인회의 어떤 분은 노익장을 과시하며 이번에 ‘워싱턴에서 3박 4일’이라는 소설을 출간 하셨고 또한 다른 한 분은 ‘녹슨 철모 구멍에 핀 보라색 들국화’라는 시를 발표했다. 이들 역시 70대 80대이다. 이런 노년들이 이 사회를 받쳐주고 있기에 젊은 세대도 이들 뒤를 따르며 새로운 삶을 개척해가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나는 활력 있고 용기 있는 이분들을 ‘젊은 노병’이라고 불러드리고 싶다. 내 친구의 자서전을 받을 때는 나 또한 칠십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때 나 역시 그들과 같은 ‘젊은 노병’의 모습으로 살아가리라고 생각하면서 웃음을 지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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