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은사님의 은퇴

2013-07-06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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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일룡 변호사

지난 주 토요일 저녁 옛 은사의 은퇴 리셉션에 다녀왔다. 이 분은 내가 졸업한 버지니아 알렉산드리아의 T.C. 윌리엄스 고등학교에서 영어 과목을 43년이나 가르치신 선생님이시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당시 워싱턴포스트 신문기자인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틴이 닉슨 대통령의 워터게이트 사건을 소재로 쓴 책 ‘대통령의 사람들(All the President’ s Men)’을 한 학기 내내 같이 읽으면서 배웠던 기억이 난다.

당시 총각이었던 선생님은 미남이셨다. 여학생들에게 인기 만점이었다. 수업이 없는 시간이면 학교 건물 뒤 테니스 코트에서 운동을 하셨는데 여학생들이 창문을 통해 내려다보며 반바지 아래로 드러난 구릿빛의 근육질 다리에 대해 평가해대던 기억이 난다. 원래 법대를 졸업하셨지만 법률가의 길을 가지 않고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시는 게 미국에 이민온 지 얼마 안 된 나한테는 신기하게 느껴졌었다.

선생님은 미국에 온지 얼마 되지 않은 나에게 참 친절하셨다. 당시 영어 발음이 시원치 않은 나는 특히 ‘R’과 ‘L’ 발음을 제대로 해내는 게 어려웠다. 열심히 노력해도 둘 다 비슷한 소리를 내기 일쑤였다. 그래서 쌀이라는 뜻의 ‘rice’를 몸을 가렵게 물어대는 이의 복수인 ‘lice’로 들리게 발음하는 것은 예사였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lice를 먹는다고 들리게끔 하는 우스꽝스런 실수를 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선생님은 나의 손을 끌고 교장실로 데려가셨다. 그리고 교장 선생님께 다짜고짜로 “park a car”를 읽어 보라고 주문하셨다. 교장 선생님은 영문을 몰랐지만 그 주문에 따라 주셨다. 그런데 교장 선생님이 읽어주시는데 ‘R’ 발음이 들리지 않았다. 매서추세츠 출신인 교장 선생님은 ‘R’ 발음을 전부 빼놓고 읽으셨던 것이다.

그러자 선생님은 나를 바라보시면서 “거 봐라, 미국에서 태어난 교장 선생님에게도 R 발음이 어렵지 않니? 그러니 미국에 온지 얼마 안된 네가 그렇게 부끄러워 할 일은 아니란다” 라고 격려해 주셨던 기억이 난다.

선생님은 영어습득에 남다른 노력이 필요했던 나에게 그 외에도 특별히 많은 배려를 해주셨다. 평소 다른 학생들에게 단어 10개를 외우라고 숙제로 내주시면 나에게는 그 배 이상을 내주셨다. 급우들과 똑같이 해서는 그들을 따라잡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선생님은 나에게 내주시는 숙제 단어 하나하나를 발음해 녹음기에 녹음해 주셨다. 한두 번도 아니고 한 학기 내내 그러셨던 것이다.

나에게 그렇게도 잘 해주셨으나 또한 공사가 아주 분명한 분이기도 했다. 내가 처음 교육위원에 출마하기 위해 준비하던 1995년의 일이다. 당시 선생님은 워싱턴포스트 등의 주요 신문에 교육칼럼을 기고하는 명망 있는 교육계 인사로 자리 잡고 계셨다. 나는 교육위원 후보로서 그런 분의 공식지지를 얻어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학교로 찾아가 뵙고 취지를 말씀드렸다.

그러나 선생님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당신은 나를 아끼고 내가 선거에서 이기기를 바라지만 나를 공식적으로 지지할 수는 없다고 했다. 당신이 교육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음을 생각할 때 더욱 그러하다고 하셨다. 오래전부터 아껴 온 제자이지만 교육위원 후보로서 나의 교육정책에 대해 아는 바가 없고, 다른 후보들과 비교해 볼 기회도 없었기 때문이라는 말씀이셨다. 공과 사는 철저히 구분해야 한다는 선생님의 가르침이 선거가 절박했던 나에게는 나름대로 서운했지만, 이 후 교육위원에 당선되어 활동하는 지금까지도 나에게 하나의 지침이 되고 있다.

사실 선생님처럼 한 학교에서 그렇게 오래 가르치신 게 일반적인 일은 아니다. 일단 30년 이상 가르치면 은퇴연금 액수와 월급 액수가 별로 차이나지 않기 때문에 수입만 놓고 보면 이미 오래 전에 은퇴하는 게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선생님은 가르치시는 게 좋아서 72세가 되도록 학생들과 씨름을 해 오신 것이다.

그런데 아직 건강하신데 왜 은퇴하시냐는 나의 질문에 선생님은 손자들 때문이라고 하셨다. 나이 40에 들어 본 늦둥이 아들로부터 손자가 둘 있는데 이제 집에서 그 애들을 돌보아 주어야 한단다. 선생님도 역시 한 명의‘ 할아버지’ 셨다. 손자들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는 것이었다. 은퇴 리셉션에서 나오면서 할아버지 선생님이 부디 건강하게 오래 사시기를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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