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천년의 바람 속에서

2013-06-29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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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옥교 시인

홀로 있고 싶어 오늘 골짜기를 찾아왔다. 여기 산골짜기에 흐르는 침묵은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이곳에 고여 있었을까/ 새소리에 섞여 간간히 바람 소리 물소리 들리는데/ 이 태고적 고요 속에 나는 얼마나 작은 존재인가/ 어느날 내가 훌쩍 이 세상을 떠나도/ 내가 살았다는 흔적은 어디에도 없고/ 바람은 그냥 속절없이 불겠지/ 천년의 시간을 가로질러 천년의 바람은 불지만/ 내 뒤에 누가 오는지 그걸 몰라 나는 쬐끔 눈물이 난다.

홀로 명상을 하고 싶을 때 나는 언덕을 올라 산골짜기를 찾는다. 내가 사는 동네는 언덕과 언덕으로 이어져 있는데 우거진 잣나무와 키 큰 적송과 오래된 참나무 숲이 있어서 10분 정도만 올라가도 깊은 골짜기를 만난다.

이런 골짜기들이 상당수가 되지만 내가 가끔 가는 곳은 작은 벤치가 있어서 거기 앉아 있기만 해도 소나무 숲 향기가 폐에 전달되고 몸 곳곳으로 좋은 공기가 흡수되어 저절로 건강해지는 느낌이 든다. 아침 일찍이나 이른 저녁엔 산골짜기를 내려다보면 사슴 무리나 칠면조떼, 때론 코요테의 모습도 보인다.


이곳에 오면 절대적인 고요함이 지배하고 이 세상에 철저히 나 혼자라는 생각이 들어 그렇게 자유로울 수가 없다. 나는 이럴 때 저절로 영원을 생각하게 된다. 인간이 영원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영원함에 목말라 있나보다.

영원한 생명, 영원한 사랑, 영원한 우정,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들은 한번도 이 영원함을 가져보지 못했다. 아마 그래서 인간은 슬픈지도 모른다. 어느날 생명이 다하면 모두 소멸되는데 그것을 가지기 위하여 우리는 얼마나 헛된 수고와 헛된 노력과 정력을 낭비했던가.

젊었을 때 우리는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곤 했다. 그 사랑이 얼마나 덧없는 것이었는지 우리는 시간이 지나면서 깨닫게 된다. 어느 노래 가사에 있듯이 그 순간만은 진실이었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 순간순간을 잘 살면 된다.

인간의 수명이 이젠 백세 시대라고 해도 백년도 눈 깜짝 할 사이에 지나간다. 이렇듯 고요한 산골짜기의 정적 속에서는 백년도 천년도 어제처럼 지나갈 것 같다. 얼굴을 스쳐가는 바람 속에서 나는 천년의 고즈넉함을 느끼고 천년의 바람소리를 듣는다.

나는 요즘 영원한 것을 지키기 위해 영원하지 않는 것을 어떻게 하면 과감히 버리고 홀가분하고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다. 사실 욕심 많았던 젊은 날에 비하면 많이 버렸다. 버리고 또 버려도 아직 버릴 것이 남아 있다는 것이 징그럽게 생각된다.

불교에서는 마음을 비운다라는 말을 많이 쓴다. 미련과 욕심과 집착을 버리면 마음이 편해지겠지만 그것은 수도승의 모습일 뿐이다. 내 주위에는 팔십을 눈앞에 두고도 눈에 보이는 것에만 관심을 가지고 쓸만큼 돈을 벌고도 아직 욕심 때문에 멈추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잘 나갈 때 멈출 수 있는 사람들은 용기있는 사람들이다. 정상에 오르면 어느 땐가는 아래로 내려와야 한다.

오늘 내가 앉은 숲속의 벤치에는 태고적 고요함이 머물고 그 속에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바람 한점이 지나간다. 천년의 바람이, 천년의 신비함이, 영원한 시간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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