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너무 빨리 변하는 한국

2013-04-27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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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선옥 자영업

LA의 벚꽃은 맑게 빛나는 뽀얀 색인데 잘 정비된 도시의 가로수로 자리 잡은 서울의 벚꽃은 흐릿한 분홍 기운이 감도는 창백해 보이는 흰색이었다. 자라면서 매년 봄이면 보았던 한국 벚꽃의 빛깔이 낯설었다.

불과 6년 전 고국을 방문했을 때만 해도 미국에서 새로운 세계를 개척해 나가는 선구자적인 자부심이 내 마음 한구석에 있었다. 이번에 가서 본 고국은 그새 변해 있었다. 한국인들의 공중도덕 의식이 세련되어 졌고 입성도 깔끔했다. 지하철 버스 택시 등 대중교통 시스템이 잘 완비되어 일상생활이 무척 편리했다.

시간이 갈수록 빠르게 발전해가는 한국의 모습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한국의 놀라운 추월은 미국에 사는 나를 후진국에서 온 방문자쯤으로 위축시켰다.


지하철 안에서 가까이 마주치든 길거리에서 멀리 보든 사람들이 하나같이 날씬하다. 모든 사람들의 얼굴이 갓 세수한 것처럼 말끔하였다. 바르면 얼굴의 잡티를 가려 깨끗하게 보이는 비비크림을 남성들도 바르는 것이 예의라고 한다.

입고 있는 옷들도 저마다 개성을 살려서 각각의 스타일이 분명했다. 너나없이 유행의 흐름을 좇아 대부분의 옷차림이 비슷해 보였던 6년 전과는 확실히 달랐다. 자신만만하고 개성 넘치는 그들을 보고 있자니 모두가 “너 잘났지? 나도 너 못지않게 잘났어”라고 말하는 듯했다. 좀 처지는 사람은 눈에 뜨이지 않았다. 한국은 저마다 ‘잘난 사람’들의 나라란 느낌이 들었다.

이런 느낌은 비행기를 타고 갈 때부터 시작되었다. 이코노미 석을 이용한 나에게 항공사 직원은 왠지 편치 않고 상전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의 과민반응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탑승객에게 서브하는 그들의 태도에서 몇 년 전과는 다른 뻣뻣함과 특별한 자존감이 감지되었다.

10여 시간 비행기를 타면서 내가 접대 받는 손님이라는 느낌은 별로 들지 않았다. 직원들은 서비스 하는 사람이라기보다 때 되면 먹을 것을 나눠 주면서 한국까지 별 탈 없이 데려다주는 비행기 속의 관리인이란 느낌이 들었다.

남편은 예쁘게 미소를 띠며 지나다니는 그들을 보며 한국 항공사 직원이 최고로 친절하다고 칭찬했다. 그런데 왠지 나는 그 미소가 형식적일뿐 나를 위한 것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한국방문 중 기본 코스인 건강검진을 받았다. 컴퓨터로 진료과목마다 상황을 체크하여 환자들은 기다리지 않고 각과의 진료를 신속하게 마치도록 되어 있었다. 마치 자동화한 의료 공장을 순례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의사는 진료실 책상 앞에 앉아서 쉴 틈 없이 들어오는 환자를 맞았다. 결과도 신속하게 나오고 이상이 있는 곳은 곧바로 수술할 수 있도록 일정을 잡아주었다. 한국인들의 빨리빨리 문화의 절정을 보는 듯 했다.


미국에서 신혼의 젊은 부부들에게 한국 제품의 인기는 대단하다. 인종을 망라하고 혼수로 장만하는 가전제품은 삼성과 LG 제품을 최고로 친다. 한국이 여러 모로 앞서 가고 있는 것이다. 다른 나라의 기술과 문화의 장점을 빠르게 흡수하여 나의 것으로 만들어 나가는 한국인의 치열한 경쟁심이 한국을 이처럼 발전시켜 놓은 것이리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에서 지내는 동안 편했고 배워야할 점이 많았다. 자유분방하다 못해 너무 편안함만 내세워서 때로 민망한 스타일을 연출하는 LA 사람들은 우선 한국인의 단정한 외양을 좀 배워야 함을 느꼈다.

이번 여행을 통해 한국은 외적인 면에서 확실히 선진국이 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일상생활 중 눈에 드러나는 면들을 보면 그렇다. 이제 내면의 성숙이 필요한 것 같다. 경쟁의 마음을 조금 늦추고 상대에 대한 따뜻한 배려심을 더한다면 대한민국은 선진시민이 사는 진정 선진국임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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