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노만 필 목사와의 만남

2013-04-22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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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만식 기윤실 운동본부 이사

내가 노만 빈센트 필 목사를 알게 된 것은 1957년의 일이다. 그렇다고 그분을 직접 뵌 것도 아니며 오직 그의 저서 “적극적 사고방식”을 통해서의 만남이었다. 교육계 대학을 졸업하고 교직생활 3년이 되던 그해 4월 나는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불면증이 계속 되더니 사람 상대하기가 싫어지기 시작하였다. 삶의 의욕 뿐 만 아니라 식욕마저 잃고 나니 거울 앞에 선 나의 몰골은 비참하였다. 결단을 내린 나는 그 시절 서울에 하나밖에 없던 돈암동 정신과 병원을 찾아가 보기도 하였지만 그것은 노이로제라는 병도 아닌 일종의 정신 착란현상으로 약도 없으니 한 달 정도 휴양을 갔다 오라고 권한다. 한편 우울증은 계속 악화되어 가고 있을 뿐 이었다.

이때 나를 근심스럽게 보고 있던 같은 동료인 J 씨가 자기도 그 병을 앓았던 적이 있다며 호흡조정으로 나의 병을 고쳐 주겠다고 나섰다. 단전(배꼽 아래 위치) 깊숙이 호흡을 들여 마셨다가 서서히 숨을 내쉬는 일종의 호흡 요법이었다. 이것이 나에게 큰 효력을 주어 2주 정도의 연습으로 불면증은 사라지고 식욕도 되찾을 수가 있었다.


그럼에도 우울증의 망상은 계속되었으며 한동안 잊어 버렸던 지난날의 아쉬움을 되새겨져 마음을 괴롭혔다. 일찍이 한국동란의 와중에서 나는 다른 동료들에 한발 앞서 위스컨신 대학의 입학허가서를 받았던 적이 있었다. 한국에 파견된 교육사절단장 맥호랜드 박사의 분에 넘치는 추천장 덕분이었다.

그러나 아내와 나는 대학졸업을 기다리 지 못한 채 일찍 결혼을 하고 가정을 가졌던 까닭에 이 일기일회로 찾아온 미국 유학의 꿈을 포기한 사연이 있었다. 그 후 세월이 흐르는 동안 많은 배움의 친구들은 다투어 독일로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가고 있었다. 이에 따른 아쉬움이 잠재의식 속에 뿌리 깊게 남아 있었던 것이다.

죽음이란 결코 남의 일 같지 않게 느껴진 나는 독서에서 탈출구를 찾기로 하고 어느 날 명동서점엘 들렀다. 신간서적 칸에 ‘적극적 사고방식’ 이란 책이 꽂혀 있어 무심코 페이지를 열어 보았다. ‘그대는 지금 손발을 움직일 수 있으며 거동할 수 있는가? 그것만으로 도 행복한 일이 아니겠는가.’ 나는 책을 사들고 급히 집으로 돌아와 계속 읽어 나갔다.

직접 나에게 말을 건네듯 연역해 나가는 문답 속에는 그와 나만의 공간만이 있을 뿐, 읽어 나가는 한 구절 한 구절이 나의 가슴속 깊은 곳에 각인 되어 가고 있었다. 책을 다 읽고 난 나는 쾌재를 불렀다. 자기상실의 미궁에서 보낸 지난 3개월, 그 배회의 미로에서 나는 광명을 찾고 힘차게 일어설 수 있었다.

책에는 교훈이나 설교조의 말이 없었다. 10여년의 교직생활을 접고 60년대 후반 우리 가족은 삶의 터전을 미국으로 옮기고 크리스천으로 거듭났다. 이곳에 살면서 기회 있을 때마다 우울증으로 고생 하는 분들에게 자주 이 호흡법과 필 목사의 말씀이라는 특효약을 무료로 나눠주고 있다.

1995년 필 목사 소천의 비보를 접한 빌리 그래함 목사는 노만 빈센트 필 목사야 말로 그 누구보다도 하늘나라 사업에 충성한 종이었다고 애도 하였다. ‘The Power of Positive Thinking’은 노만 빈센트 필 목사가 92년 생애에 남긴 단 한권의 저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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