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명문대가 뭐길래

2013-04-20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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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성호 RV 리조트 경영

오랜 친구로부터 아들집에 다녀오겠다는 전화가 왔다.

“왜, 아들 내외 휴가 가니?”“아니, 가사 도우미가 휴가래. 한 주 정도면 견딜 만한데 두 주는 좀 무리라 이번에는 집안일은 다 놔두고 애들과 놀아만 준다고 했어. 나도 이제 몸이 허락하지 않아”“그래, 아직 쓸 만해서 불려 다닐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해”대학입학 시즌만 되면, 이 친구와 나는 아이들 명문대학, 대학원만 졸업시켜놓으면 만사해결인 것처럼 그 일에 매달렸던 옛 이야기를 하며 떫은 추억에 잠긴다.

그 많이 배운 잘난 아들 며느리와 떨어져 살아도 뒤치다꺼리가 장난이 아니다. 친구나 나는 덕분에 좋은 식당엔 다녀봤지만 며느리 손에 제대로 된 밥상 한 번 받아 본 적 없다.


그래도 우리는 약과다. 필요할 때 자주 불려 다니기라도 하니. 한 친구는 외아들에게 하버드 입학하면 아들 인생에 관여 않겠다는 약속을 지키느라 멀리서 아들을 지켜보며 감히 아들집을 들락거리지도 못하고 있다.

지금 명문대학 합격통지서가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희비에 엇갈려 웃고 우는 가정들을 보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대게 경쟁에서 늘 이기는 사람들은 우월감 때문에 더 치열한 경쟁에서 승자가 되려고 더 힘겹게 살아야 하니 인생에서 여유를 누릴 기회가 적어진다.

요즘 가끔 반즈&노블 서점엘 가서 젊은 부모들이 아이들과 같이 어린이 코너 특별행사에 참여하는 것을 보면 엄마로 그런 혜택도 주지 못한 우리 아이들에게 지금도 미안하다.

그런데도 제가 알아서 공부한 아들에게 공치사도 많이 했고 평소 내 말을 좀 들어주는 것 같아서 여러 가지 간섭도 좀 했더니 무슨 특별한 일에는 엄마 허락을 받아야한다는 강박감이 있었는지 한 번은 말끝에 “엄마는 우리집안 여왕 같아”라는 게 아닌가!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내 일상의 감정까지 식구들에 매여 있어서 ‘엄마의 기상도’라는 수필을 쓰며 나 스스로를 달래며 살았는데 모든 집안 대소사를 내가 여왕같이 주장했다니...

대학 다닐 때만 해도 “난 엄마 잔소리 좀 들어야하니 엄마 음성 녹음 알람이 좋다”던 애가 지금 완전 내 영역 밖인데 언제 내 다스림을 받았다고 그런 말을 할까?내가 매여 있었다면 나도 그들을 나에게 매고 있었다는 말인가! 아들이 중년이 됐어도 내 말에 “노” 라는 말을 쉽게 하지 못하는 거북한 감정일까? 뭐야, 여왕처럼 존경한다는 말은 아니고 군림해서 백성들을 괴롭힌다는 의미 아닐까?같은 가지에 핀 꽃도 모두 다른데 내 마음에 맞는 아이들을 만들려고 얼마나 압박감을 줬는지 새삼 반성하게 된다. 각자 나름대로 사는 것이 순리고 조화다. 자녀들을 위한 모든 긴 노력은 잠시의 기쁨으로 스쳐가고 길고 긴 고통들은 순간의 기쁨으로 치유하며 살아간다.

입학, 졸업 모두 축하할 일이지만 그 과정만이 성공도 인생의 전부도 아니다. 나는 지금 명문 대학 졸업을 못해 부모에게 죄스러워했던 그 아들의 보살핌으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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