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세월의 흐름 속에

2013-04-1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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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설자/ / 수필가

푸석푸석한 땅을 비집고 솟아오르는 생명들의 몸짓을 보면서 봄이 오는 소리를 듣는다. 그것은 산골 계곡에 얼어붙었던 얼음이 녹아 흐르는 계곡 물소리일수도 있고, 아지랑이 차고 오르는 노고지리 소리일 수도 있다.

겨우내 시꺼멓게 굳어있던 고목에도 잎이 솟아오른 세월의 변화 속에 점점 늘어나는 흰머리 가락을 쓸어 올릴 때면 늙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늙는다는 것은 육체가 세월 따라 노쇠해 간다는 것임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가끔 마음이 언짢을 때가 있다.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일이 많아지고,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사람이 많아지는 세월의 흐름 속에 언짢아지는 것은 다름 아니라 늙음을 적응해 내지 못하고 아직도 젊다는 나의 마음 밭에 세월의 흐름을 반역하려는 의지가 강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리라.


교황 바오로 2세가 임종 할 즈음 마지막으로 “나는 행복합니다. 여러분들도 행복하십시오” 라고 했다고 한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슬픔과 고독, 그리고 후회가 가슴에 응어리지지 않고 행복했다고 고백하는 것은 한순간에 일어난 감정이 아닐 것이다.

서양 격언에 “제일 가르치기 어려운 수학문제는 우리가 받은 축복을 세어보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세월의 흐름 속엔 한국에서 30년의 세월이 있었고, 미국에서 40년 이민자로 살면서 초창기엔 너무나도 외로워서 울었고 또 힘들고 고달파서도 많이 울었다.

인간은 세상과 더불어 늙는 것이 아니라 이상(理想)을 잃을 때 늙는다고 한다. 규칙적인 생활 속에서 절대로 이상을 잃지 않는 굳건한 믿음 지켜가며 더 이상 늙지 않는 날들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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