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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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심는 사람들

2013-04-11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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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용진 시인

이른 아침/새들이 깨우는 소리에/눈을 떠/창을 여니/자두나무 가지위에/산새 가족들이/구슬을 꿰인 듯/쪼르르 앉아 있다.//하루 일과 훈시를 듣는가./조용하더니/어미 새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자/새끼들도 창공에 무지개를 그린다.//활처럼 휘어졌던/자두나무 가지들도/겨울잠을 털고/시위를 당겨/봄을 쏘고 있다.//머 언 산 과녁엔/생명의 빛이 번득인다./저들은 늦가을/열매로 익어 돌아오리라./ 필자의 시 ‘봄’의 전문이다

겨우내 팍팍하고 메말랐던 강산에 봄이 오고 있다. 산들산들 실바람을 타고 강남 갔던 제비가 봄소식을 물고와 알을 낳으려고 처마 끝에 둥지를 틀고, 겨우내 얼어붙었던 시냇물이 율동을시작하면 봄의 교향악이 산천에 울려 퍼진다.

옛 시인 도연명은 ‘사계’란 시에서 ‘봄물은 못마다 가득하고, 여름 구름은 묘한 봉우리를 이루었도다. 가을 달은 유난히도 밝은데, 겨울 산정에 홀로선 소나무는 외롭기도 하구나’(春水滿四澤 夏雲多奇峰 秋月揚明輝 冬嶺秀孤松)라고 읊었다. 춘색이 옷깃을 스치면 연인들의 얼굴에 화기가 돌고, 온 동산이 향기로 가득 찬 꽃밭이 된다. 우주 속에 천혜의 울타리인 자연은 아름다운, 그리고 영원한 우리들의 이웃이다.


자연은 본래의 모습대로 자연스러울 때 가장 아름답다. 고요하고 평화롭게 주야로 흘러가는 물길을 인간의 오산된 욕망으로 가로막으면 하늘이 노하고 땅이 광란한다. 그 비근한 예가 우리나라의 4대강 사업이다.

청계천 도랑을 청소하여 서울시장이 되고 종래는 대통령이 된 MB 정부에 의해서 태고로부터 오늘에 이르기 까지 주야로 유유자적하게 흐르면서 갈대밭과 모래사장, 그리고 여울을 이뤄 인간에게 숱한 도움을 주는 축복의 강을 20조가 넘는 막대한 국고를 낭비하여 보로 가로막아, 강물이 유속이 갑자기 느려지고, 갯벌이 살아져 온갖 오물들이 침적되어 민물 재첩들이 죽어가고, 강과 바다를 오가면서 산란을 하던 뱀장어 등 물고기들의 생태계가 하루아침에 파괴되는 이변을 낳았다.

일찍이 노자는 어리석은 자들을 향하여 자연을 거스르지 말라고(無爲自然) 가르쳤다. 인간들은 원시에서 오늘에 이르기 까지 자연으로부터 받고 또 자연으로 되돌려주는 기브앤드 테이크의 아름다운 관계를 서로 유지하면서 공존해 왔다. 나는 여강변 여주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시심을 키우고 자란 것을 내 인생의 가장 큰 행복으로 생각한다.

나무들은 이름 봄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향기를 발하고, 열매를 맺어 싱싱한 과일들을 온갖 생명들에게 선물하고 동풍설한 매서운 서릿바람이 몰아치면 홀로 외롭게 서서 모두를 벗어던지고 나목이 되어 다시 오는 또 하나의 싱그러운 봄을 기다리며 낙엽귀근의 고귀한 교훈을 인간을 향하여 무언으로 전해준다.

주자학의 비조 주자의 십회문을 보면 ‘사람이 젊어서 배우지 아니하면 늙어서 후회하고, 봄에 심지 아니하면 가을에 거둬드릴 것이 없어서 후회한다’(少不勤學 老後悔 春不耕種 秋後悔)라고 일렀다. 뜰 앞에 봄이 오는 소리를 듣지 못하고, 앞산에 아지랑이가 손짓하는 모습을 바라보지 못하면 한해를 허망하게 보내게 된다.

올해로 100년을 맞이하는 흥사단 창설자 도산 안창호 선생께서도 ‘참배나무에는 참배가 열리고 돌배나무에는 돌배가 열린다’고 말씀하셨다. 오늘 우리가 참배나무를 심어야 우리의 후손들이 먼 후일 달고 시원한 참배를 따먹으면서 선조들에게 감사할 것이다. 문 앞에 기름진 텃밭이 우리들을 향하여 봄의 교향곡을 부르고 있다. 우리들의 부드러운 손길을 기다리는 싱그러운 봄을 가꾸기 위하여 땀 흘리는 수고를 다하자. 봄을 심는 사람들은 가을에 풍성한 열매를 얻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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