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후회속의 만남

2013-04-06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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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청원 내과 전문의

파도소리만 밤의 적막을 깨는 바하 멕시코 샌 퀜틴 바닷가였다. 타오르는 모닥불이 추위를 녹여주고, 그 불빛이 어둠을 밝혀준다. 두 멕시코 원주민 청년이 불쑥 찾아왔다. 불빛에 비추어진 두 얼굴에서 15년 전의 추억이 떠오른다.

당시 그들은 11살 소년 엔리께와 그의 6살짜리 조카였다. 그들은 인가라고는 3마일 떨어져 있는 외딴 바닷가 한 채밖에 없는 덩그런 오두막집 한방에 기거하고 있었다. 그 집 바로 옆 캠프장에 묵던 나는 텐트에서 나와 시내 병원으로 가던 중이었다. 바닷가 모래사장을 걸어 학교로 향하던 아이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엔리께는 어린 조카들과 동생들을 데리고 일주일에 이틀만 한 학년밖에 없는 교실을 5년간을 반복해 다니던 소년이었다.

그날 아침은 엔리께에게 특별한 날이었다. 전날 밤 전해 받은 책가방(백팩)을 등에 메고 콧노래를 부르는 상쾌한 가벼운 발걸음의 등교시간이었을 것이다.
어린 급우들의 가방을 쳐다만 보고 부러워하던 그에겐 나도 가방을 가졌다는 자랑스러운 날이었고 그런 엔리께를 본 내겐 뿌듯한 날이었다. 어린 나이에 게으른 아버지를 돕느라고 집안 일에 더해 바다에 나가 조개를 캐고 가재를 잡아 불평 않고 묵묵히 가족의 생계를 꾸려가고 있었다. 어깨는 무거웠지만 티 없이 맑고 수줍음을 타는 무공해 소년이었다.


순수함과 측은함에 그의 생활에 관심을 갖게 된 나는 몇 번의 만남 속에서 그에게 무엇인가 손에 쥐어 주고 싶었다. 그가 갖고 싶은 것이 학교에서 쓰는 백팩이라는 것을 알게된 나는 딸과 아들이 썼던, 그래서 벽장 구석에서 잊혀져 있었던 그 백팩을 가져다 준 것이다.

상대적 풍부함속에 하찮게 여기는 우리의 잔 부스러기 하나가 지구의 한편에서는 기쁨이었고, 요긴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난 그에게 아버지와 똑같은 운명을 반복하지 말라고, 배우면 가난을 벗어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난 그의 아버지와 장성한 형에게도 설명했다.

그들 가족을 설득하는 한편 2년 동안 엔리께가 30마일 떨어진 시내의 중학교를 다니는데 후원 해주었다. 방문 때마다 학교를 잘 다니고 있는지 체크했지만 엔리께는 형편상 학교를 더 다니지 못했고 나도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의료봉사를 하느라 더 이상 관심을 갖지 못했다. 몇 년 후 그가 시내로 나와 공사장과 정비소등에서 막일을 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확인 안 된 주위 소문으로는 마리화나도 피웠다고 했다.

오늘 그가 10년 만에 그 조카와 같이 불쑥 찾아온 것이다. 모닥불 앞에서 통나무에 셋이 나란히 앉아 우린 지난 추억들을 나누었다. 같이 게, 가재, 문어등을 잡던 일, 갯바닥에서 동네 아이들과 야구라는 것을 처음 배우던 일... 시내에서 하던 막일에도 지치고 결혼생활도 이혼으로 끝났다는 그는 어린 시절을 보낸 이곳으로 돌아와 다시 조개와 가재를 잡아 생계를 꾸린다고 했다. 요즈음은 해산물도 많이 줄었다고 말하는 그의 거칠어진 얼굴엔 걱정의 표정이 역력하다. 그날도 온종일 채집한 조개가 30여개뿐이 안되지만 다 우리에게 주고 싶어 했다. 오늘 밤 떠날 때 깜깜한 밤길을 안내해주겠다면서 지금은 힘도 세어져 차가 설령 수렁에 빠져도 건져 줄 수 있으니 걱정 말라고도 했다. 10년 전의 호의, 우정에 대한 감사의 표시였으리라.

한밤중, 그는 우리가 지나갈 외딴 길가에 자기 차를 세워놓고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고 우린 그의 안내로 무사히 외딴 오지를 빠져 나왔다.

우리 인생에는 3가지 후회가 있다고 한다. 좀 더 참을걸, 좀 더 즐길걸, 좀 더 베풀걸…조금만 더 정성을 베풀었어도, 약간의 보탬만 더 계속했었어도, 그를 다시 원점으로 돌려보내지 않았을 그런 아쉬운 후회가 바닷바람처럼 지금도 나를 스치며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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