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연애편지

2013-03-23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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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폴 손 엔지니어

대학생 시절 어느 봄날, 어느 여대생 50명과 우리 남학생 50명이 서울 근교의 수락산을 올라갔었다. 100명의 대학생들이 열개의 조로 나뉘어 올라갔었는데, 우리 조에는 모두 갓 대학에 입학한 햇병아리 여대생들이었다. 그 중에 유난히 눈길을 끄는 앳된 여대생이 있었다.

하산해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한 후배가 그 여학생들과 다시한번 같이 산에 갈 기회를 알아봐 달라고 했다. 연애 박사로 보였던지 한마디를 던지니 여대생들도 기다렸다는 듯 모두 좋단다. 그 다음 달엔 관악산을 올라갔었다. 그러다 후배들이 아닌 나 자신이 그 여대생에게 빠진 것이었다.

여름방학이 오니 이 여대생은 지방에 사는 언니 집으로 조카 가정교사를 하러 가야 한다고 했다. 언니 집으로 간 애인의 첫 연애편지를 받았다. 내가 듣고 싶은 말은 없는지, 이 말은 무슨 뜻으로 했는지 궁금해 하며 시간만 나면 읽고 또 읽었다. 그러다 그녀가 쓴 연애편지들을 줄줄 외우게 되었다. 정작 편지를 쓴 사람은 기억도 못하는 말을 다 외웠으니 놀라는 사람은 오히려 애인이었다.


미국으로 오면서 대학 때 쓰던 교과서는 안 가져 왔어도 이 연애편지 묶음만큼은 확실히 챙겨서 왔다. 40년이 훨씬 넘은 이 연애편지들은 안방 주인과 함께 지금도 안방에 확실히 자리잡고 있다. 내가 군 복무할 때엔 졸업 카니발에 혼자라며 투정하던 편지, 사진을 들고 골상을 보러가 ‘이 사람과 이혼할 팔자’라는 말을 듣고는 절교를 선언했던 편지 등등, 모두가 소설 감이다.

이 앳된 여대생이 결혼 후, 예수를 자신의 구세주로 영접을 했다. 그 후 우리는 일요일마다 교회를 간다 못 간다로 싸우기가 일쑤였다. 한번은 신유 부흥회 한다는 곳을 호기심에 따라 갔었다. 영접 초청 시간에 영접하겠다는 마음이 강하게 치솟았다. 기도를 따라하는데, 무엇인지 모르게 위장에 뜨거운 것이 스쳐가는 느낌이었다. 대학생 시절, 끼니도 걸러 가면서 서울 바닥을 동서로 뛰며 가정교사를 하다 위산과다증이 생기게 되었고, 밥만 먹으면 꼭 되새김을 해서 소화제를 항상 지참하고 다니던 때였다. 그 시각 이후로 위장에 아무런 탈이 없이 지금까지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 그 당시 평안이 신기할 정도로 영혼에 스며들었다.
그 후로 성경을 읽고 또 읽었다. 읽을수록 이 성경책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보내신 연애편지의 묶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매일 처한 상황에 따라 이 하나님의 연애편지는 더 찡하게 영혼을 파고든다. 인생길에서 돌아보니 막다른 골목길에서도, 선택의 갈림길에서도, 오르막길에서도, 내리막길에서도, 비탈길에서조차 하나님께서 함께하셨음을 깨닫는다.

조금씩 이 연애편지 구절들이 마음에 스며들어 암송하게 되었다. 최소한 100 구절은 암송을 해야 겨우 하나님의 사랑을 알 것 같다. 그것도 남에게 으스대거나 의무감으로 외운 게 아닌 자신의 영혼을 일깨운 구절들 말이다. 이민 교회들의 ‘100구절 클럽’을 기대해본다.

다시금 성금요일이 온다. 하나님이 피조물에게 보여주신 사랑은 자기희생이다. 상대의 마음을 사로잡거나 지배하려는 것보다는 자신의 희생을 감수해야 사랑이 완성되는 것이다.

“도성 벽 밖에/ 나무로 엮어 만든 십자가 위로/ 한줄기의 빛이 어두움을 비추네/ 손에선 피가 흐르고 / 옆구리로는 솟아 넘치네/ 그 긍휼의 강이/ 그 긍휼의 강이...” 라는 호주의 시드니에 있는 힐송(Hill Song) 교회 음악팀의 ‘지극히 높은 사랑 (Love so high)’이라는 찬송이 귓전을 울린다. 날마다 부활의 삶을 살아야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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