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버스를 타고

2013-03-16 (토)
크게 작게

▶ 홍병찬 / 수필가

매달 정규적으로 피 검사를 받는다. 오늘도 메릴랜드 대학병원의 문을 연다. 승강기를 이용하지 않고 운동 삼아 한 계단 한 계단씩 2층에 있는 검사실까지 올라간다. 문을 여니 이미 와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꽤나 있다.

간호사는 왼쪽 팔뚝 중간에 주사바늘을 찌르고 3개의 검사용 컵에 피를 담는다. “다 되었습니다” 하는 소리에 질끈 감았던 눈을 뜨고 팔뚝에 붙인 반창고를 보면서 소매의 단추를 잠근다.

병원 문을 나서니 밖은 한산하고 차분하며 고요한 분위기마저 감돈다. 이런 가라앉은 거리에서 나는 마음껏 늦겨울의 차가운 공기를 폐부까지 들여 마셔본다.
가볍게 산책하는 마음으로 걷기로 결심하고는 10분 쯤 걸리는 버스 정류장으로 발걸음을 옮겨간다. 차갑고 썰렁한 바람이 옷깃을 스쳐지나가지만 오히려 상쾌하고 시원한 느낌마저 든다.


버스 정류장에 놓여있는 긴 의자에 앉아 길 건너편에 우뚝 솟아 있는 고층 빌딩들을 보면서 “인간의 저력은 칭찬할 만하구나”라고 감탄하며 버스가 오기를 기다린다. 15분쯤 지났을까, 마침내 버스가 온다.

운전석 뒤쪽에 위치한 포근한 의자에 기대고 눈을 감으니 병원에서 긴장했던 순간들, 그리고 그 동안 무언가 쌓였던 스트레스가 눈이 녹아 내리 듯 흘러버리는 느낌이다. 눈을 감고 있으니 마치 버스를 타고 어디론가 긴 여행을 떠나는 기분에 행복한 마음이 든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