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춥기는 했었지만 …

2013-02-16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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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며 배우며

▶ 폴 손 엔지니어

세상을 살아보니 스트레스는 필요악인 것 같다. 스트레스가 너무 많아도 능률이 떨어지지만, 전혀 없어도 능률이 떨어진다. 우리가 감당할만한 정도의 스트레스는 능률을 증진시킨다. 성경을 보면 이 스트레스는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신 후, 그들에게 선악과를 따먹지 못하게 명하셨을 때부터 시작된 것 같다. 그들은 그 선악과나무를 지나치거나, 생각만 해도 스트레스가 절로 생겼을 터이다. 우리 삶에서도 선악과보다 더한 유혹으로 잠을 설치게 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다. 너무 지나치면 알게 모르게 혈당, 콜레스테롤, 혈압 등이 올라 서로 합력하여 악을 이룬다. 스트레스의 가장 가까운 근원은 바로 집안이다. 부부 싸움으로 얼마나 많은 소모전을 치르며 서로의 명을 단축시켜왔던가? 돌아보니 부부 사이의 화목을 위해 기도한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러니 교회 다니면서도 싸울 수밖에 없다.

엄습해오는 스트레스를 감당하지 못해 피할 수 있는 길을 택하지만 오히려 더 큰 스트레스를 당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마치 자신의 법적인 문제를 변호사의 도움으로 해결하려했는데, 악덕 변호사를 만나 더 어려움을 당하는 경우와 흡사하다.


일상생활에서 차가 고장 난다든지 집안의 가전제품이 고장 나는 경우가 더러 있다. 하필이면 꼭 필요할 때 문제가 생겨 스트레스 정도를 높인다. 차가 고장 날 때 가야할 곳이 더 많이 생기니 이것이 운명의 장난인가? 1달러가 모자라고, 1분이 늦는 경우가 다반사이니 어차피 인생은 미완성 교향곡이라고 해야 하나?

지난 달, 한파가 밀어닥쳤다. 하필 그 때 집안의 7년 된 개스 히터가 작동을 멈췄다. 아침에 눈뜨면 집안에 냉기가 돌아서 간밤에 안 얼어 죽고 아침에 숨 쉬고 있다는 것이 감사했다. 아내가 히터를 설치한 회사에 전화해서 도움을 요청하니 그들도 바빠서 목에 힘을 주고 응답했다. 며칠을 더 냉방에서 지내야 했었다.

수리공이 와서 점검을 하며 120달러 진단료에다 750달러의 수리비가 든다고 했다. 추운데 빨리 해결을 보고 싶었지만, 엔지니어라 앞뒤가 맞는지 점검을 해야 하는 근성이 나왔다. 옐프닷컴(www.yelp.com)에 가서 믿을만한 곳을 몇 군데 정해서 차례로 전화했다. 그중 한 수리공과 통화를 하니, 자신은 500달러에 문제가 있다는 그 부속을 바꾸겠지만 그것이 문제인지 확인한 후에 바꾸겠다고 했다. 어느 정도 납득이 되어서 그에게 수리를 맡겼다. 그 수리공은 그 부속이 문제가 아니고, 전자 회로판이 문제이니 회로판을 바꿔야한다고 했다. 어느 선악과를 따먹어야 하나? 하는 선택의 기로에 다시 서게 된 것이었다.

회로판이 문제가 아니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으니, 아니면 무료란다. 약 15년 전부터 시판된 히터 설계에 효율을 높이기 위해 들어간 이 제어용 회로판이 쉽게 고장이 난다고 한다.

드디어 히터가 작동했다. 120달러를 주고 잘못 진단 받은 일에 화가 났다. 우리는 화가 날 때, 왜 화가 나며 어떻게 그 화를 분출시키며, 화를 내서 얻는 게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보는 문화권에서 자라지 않았다. 그래서 한국 정치판을 보면 난장판이다. 미국 정치판에서는 화가 나도 웃으며 이야기한다. 화를 내기보다는 목적을 이루기에 더 충실한 것이 미국 문화이다.

그래서 첫 번째 왔던 수리공의 회사에 120 달러를 반환해달라는 편지를 썼다. 읽고 또 읽어 감정적인 표현을 다 걸러냈다. 며칠 후 그 돈을 반환해주겠다는 전화가 왔다. 그동안 춥기는 했었지만,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바르게 고칠 수 있어 비용도 덜 들고, 스트레스 정도를 낮출 수 있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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