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죽은 자들의 마을

2013-02-09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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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바 오 사진작가

친한 친구의 남편이 얼마 전 돌아가셨다. 90세가 넘도록 사셨고, 살아있는 동안 보기드믄 모범가정을 이루며 행복한 삶을 사신 분이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은 호상이라며 부러워하기까지 했다.

살아생전 아내의 내조가 극진했고, 자식은 자식대로 효성이 남 달랐다. 재물도 세상 부럽지 않을 만큼 가졌었으니 이 아니 호상이겠는가. 그럼에도 가족들은 “조금만 더 사시지” “이렇게 가실 줄 알았더라면 더 잘 할 것을” 하며 안타까워한다.

배우자를 먼저 떠나보내는 인생의 마지막 슬픔은 두 가지로 나뉠 수 있겠다 싶다. 부부가 어떻게 살아왔던 가에 따라 차이가 있는 것 같다. 부부가 원수처럼 으르렁대며 행복하지 못하게 살았던 경우의 회한과 따뜻하게 손잡고 서로의 체온을 느끼며 애지중지하며 산 경우의 슬픔은 다를 것이다.


슬픔에 잠긴 친구와 얼마 전 그의 남편 묘지를 찾아갔다. 할리웃에 위치한 나지막한 언덕. 아름다운 작은 정원 같았다. 잔잔한 꽃과 나무들이 자연스럽게 정원을 이루고 수풀이 우거진 사이사이에 돌들이 여기저기 놓여 있었다.

그곳은 화장 후 재를 묻는 묘지이다. 재를 묻고 그 위에 돌을 놓은 후 돌의 동판이 비석 역할을 한다. 한뼘쯤 되는 돌들이 띄엄띄엄 자리 잡고 있는 광경을 보니 어린 시절 친구들과 땅따먹기 놀이를 하던 생각이 났다. 땅바닥에 앉아 손바닥 넓게 벌려 크게 동그라미를 그리며 ‘이거는 내 땅이야’ 하며 놀던 추억이 떠올랐다.

언덕 위에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보니 시골의 초가지붕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이었다. 죽은 자들이 한데 모여 참새 지저귀는 소리 들으며 오순도순 살아가는 마을 같은 곳, 잠시 쉬어 가고 싶은 정감 있는 곳이었다. 한줌의 재로 머물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그곳에서는 이웃이 다 똑 같다. 일반 공원묘지처럼 큰 묘지, 작은 묘지가 없다. 그러니 잘난 사람도 못난 사람도 없다. 이웃이 다 친구가 될 것 같다. 너무도 다정한 분위기이다.

요즈음 장례비용이 만만치 않다. 장의 관련 사업자들이 많이 생기고 경쟁 또한 대단하다. 묘지도 천차만별이다. 돈만 있으면 제일 높고 좋은 자리에 널찍하게 무덤을 만들어 고관대작 흉내를 내고 싶어 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렇게 묘지를 거창하게 만들 필요가 있는지, 높은 곳에 혼자 뚝 떨어져 외롭게 있을 필요가 있는 지, 그런 곳에 갈 때마다 회의가 들곤 했다.

그런데 친구 남편의 묘지에 가보고는 그곳이야 말로 죽은 자들의 낙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참으로 행복하게 묻힐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다. 빈부의 차이가 없고, 이웃이 가깝고, 사랑이 깃들어 보이니 이곳이 바로 천국이구나 싶었다.

친구 남편의 묘지에 가본 후 갑자기 죽음이 무섭지 않아졌다. 그곳에 편안하게 묻힐 것 같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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