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15일 80세로 사망한 전후 일본 영화계의 앙팡 테리블 나기사 오시마(사진)가 친한파인 줄은 이번에 그의 60년대 작 5편을 모은 박스세트 ‘오시마의 60년대 무법자들’(Oshima’s Outlaws Sixties)을 보고 나서야 알았다.
오시마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영화가 국제적 빅 히트작인 ‘감관의 영역’(1976). 실화가 원전인 영화는 성적 쾌락의 절정을 경험하기 위해 정사 중이던 남자를 교살하고 그의 성기를 절단한 여자에 관한 에로스와 죽음의 드라마다. 예술적 포르노로 외설문제 때문에 오시마가 재판까지 받았는데 그의 많은 영화들은 섹스를 천착하고 있다.
오시마는 내용과 스타일 면에서 과감한 혁신을 추구한 일본 영화계 뉴웨이브의 선구자로 일본의 고다르라고 불렸다. 그런데 본인은 이를 싫어했다고 한다.
섹스와 함께 죽음과 범죄 그리고 욕망과 국외자들에 관심이 많았던 오시마는 전후 일본 청춘들의 절망과 분노와 반항을 그린 ‘청춘 잔혹사’와 ‘태양의 매장’으로 일본 영화계에 두각을 나타냈다. 둘 다 1960년 작으로 오시마를 처음으로 고용한 스튜디오인 쇼치쿠의 영화다. 오시마는 일본의 케케묵은 전통과 인습과 도덕적 개념 그리고 사회적 규범을 뒤집어 엎어 버리려고 애를 썼는데 따라서 그의 주인공들도 모두 범죄자나 반항자 및 사회적 소외자들이었다.
특히 그는 일본의 인종차별과 외국인 혐오 및 이민자들에 대한 불공평한 대우에 깊은 관심을 보이면서 재일 한국인들이 겪는 부당한 처우에 크게 분노했었다.
나는 이번에 오시마의 사망소식을 듣고 소장했던 그의 영화들을 꺼내 보면서 깜짝 놀랐다. 한국인에 대한 묘사가 믿어지지 않을 만큼 친근하고 우호적이자 또 동정적이었기 때문이다. 요즘 한국과 일본이 서로를 곁눈질하는 처지여서 오시마의 영화가 더 강하게 어필했는지도 모른다.
오시마가 일본의 반한감정과 재외동포에 대한 차별에 분노하게 된 까닭은 그가 지난 1964년 한국을 방문한 경험 때문이라고 한다. 당시 박정희 독재정권 하에서도 결코 좌절하지 않는 한국 젊은이들의 정신을 보고 크게 감동을 받아 귀국 후 3편의 친한 영화를 만들었다. 이 3편은 오시마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들이다.
오시마의 박스세트에 담긴 친한 영화는 ‘섹스 노래를 부르자’(1967)와 ‘3인의 부활한 주정뱅이들’(1968). ‘섹스 노래를 부르자’는 성적으로 얄궂은 청춘문화와 젊은이들의 심리여정을 탐구한 작품으로 주인공 중 한 명인 도쿄대 입시를 치른 여학생 카네다는 한국인이다. 영화 끝에 또 다른 주인공인 여자가 한일 간의 역사를 열거하면서 “한국인이 우리의 조상”이라고 역설한다.
‘3인의 부활한 주정뱅이들’은 베트남전에 안 가려고 일본으로 밀항한 한국 육군 병장과 그의 2명의 친구들에 관한 어릿광대 극 같은 반전영화이자 오인된 신원과 함께 일본의 뿌리는 한국임을 강조한 작품이다. 영화에서 행인들을 상대로 인터뷰하는 장면이 있는데 한결 같이들 “나는 한국인”이라고 말한다.
마지막 친한 영화는 박스세트에는 없는 ‘교수형’(1968).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었는데 주인공은 강간살인죄로 사형선고를 받은 젊은 재일교포. 사형과 일본인들의 외국인 혐오에 관한 준열한 비판이다. 박스세트에 수록된 나머지 영화들은 섹스와 자기 파괴를 그린 ‘육체의 쾌락’(1965)과 성욕의 파괴성에 관한 ‘정오의 폭력’(1966) 및 폭력문화에 관한 황당무계한 허무주의적 작품 ‘일본의 여름: 이중자살’ 등이다.
오시마의 영화들은 대부분 폭력과 섹스, 배덕과 죽음과 정치적 이상주의의 실패 그리고 계급간의 압제 및 사회의 불공정과 인종차별 등을 신선하고 대담한 스타일과 폭발적인 내용으로 표현하고 있다. 오시마의 영화가 정치성이 강한 까닭은 그가 교토대 법학도 시절 좌파로 활동한 경력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후에 좌파에 혐오를 느껴 감독이 된 후 좌파의 이상의 실패를 다룬 ‘일본의 밤과 안개’(1960)를 만들었으나 영화가 나온 지 며칠 안 돼 일본의 좌파 지도자가 극우파에 의해 암살되면서 배급사인 쇼치쿠는 영화를 극장에서 철수시켰다. 이것이 오시마가 쇼치쿠를 떠난 이유다. 그 후 그는 독립제작사를 만들어 실험정신이 강한 영화들을 만들었는데 박스세트의 작품들은 다 이 때 것들이다.
‘감관의 영역’의 속편격인 ‘욕정의 제국’으로 칸영화제 감독상을 받은 오시마의 다른 영화로는 영어로 만든 2차 대전 포로수용소의 드라마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1983)가 있다. 그의 유작은 사무라이 수련생들 간의 에로틱한 관계를 그린 ‘타부’(1999).
금기사항에 과감히 도전한 오시마는 평생 일본사회와 영화를 비판한 휴머니스트요 진정한 독립영화인이었다. 그래서 그는 “나는 일본 영화 전체를 증오한다”고 공언한 바 있다.
편집위원/ hipark@korea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