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칼럼/ 새해에는…
2013-02-04 (월)
김은주(할렘 PS 57 초·중학교 과학교사)
이달 10일은 한민족 최대 명절인 설이다. 복도 많이 받고 소원 성취도 해달라고 기도하는 때이기도 하다. 최근 읽은 임영준 시인의 ‘새해에는’이란 시 하나를 소개하자면 ‘새해엔/모두 부자 되게 하소서/돈벼락을 맞아/입원한 사람들을 문안하느라/정신없게 하여 주소서/새해에는/다들 정치인이 되게 하소서/특정인 몇몇이 다 해먹는/삼류국이 아닌/일등나라 사람으로/자부심을 갖게 하소서/새해에는/사랑으로 넘치는 세상이게 하소서/콧대 높은 여자도, 두 얼굴의 남자도/누구에게나 베푸는/약간은 에로틱한 사회가/되게 하소서/새해에는/시간이 느려터지게 하여 주소서/한해가 다섯 해만큼이나 늘어져서/지루한 중년을 벗어나고 싶어 하는/친구 녀석들의 푸념에/질리게 하여 주소서/새해에는/이도 저도/이루어지지 못할 거라면/그냥 지금 이대로/소시민으로 남게해 주소서/그것뿐이외다’라는 글이다.
이 시를 읽으면서 그냥 소박한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돈이 많다고 행복한 사람을 보지 못했다. 인기가 소위 ‘짱’이라고 해도 그냥 임시적인 것일 뿐이고 과거 잘나가던 시절만을 그리워하며 망상에 빠진 사람들도 많이 봤다. 명예나 학벌을 내세워 자기 잘난 것을 나타내려 아우성치는 이들도 많다.
새해에는 아무쪼록 외적으로 보이는 부분에 신경 쓰려 하기 보다는 정신건강을 챙기는 해가 되길 바라는 바다. 그러면 자식이 부모를 총으로 쏘는 끔찍한 일도 없을 것이고 자식이 무기력하게 부모 등골이나 빼먹는 일도 없을 것이고 약물에 의존해 살지도 않고 삶 자체를 비관하며 사는 불행한 사람도 없어질 것이고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하다는 착각 속에 사는 사람도 많이 없어질 것이다. 그러니 새해에는 모든 한인들이 정신건강 검진에 열중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무리 웰빙을 외치며 육체적인 건강을 챙겨도 정신건강에 이상이 있다면 사는 게 사는 게 아닐 것이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는 소위 흑인이 많이 거주하는 시민 아파트 일명 하우징 프로젝트에 사는 사람이 많은 할렘에 있다. 지역 주민의 거의 대부분은 웰페어에 의존해 살아가고 있다. 물론 직업을 지닌 사람도 있지만 대다수가 무직이고 마약 딜러도 많다. 부모가 직업이 없는데도 늘 번쩍번쩍 꾸미고 다니는 학생들이 있는 것을 보면 아마도 우리 학교 학부모 가운데에도 마약을 팔아 생활하는 학부모도 꽤 되는 것 같다.
학교 인근 동네에는 야채가게를 하는 한인 아주머니가 있다. 이 학교에 부임한 지 갓 1 년이 넘은 나는 가끔 그 야채가게를 찾아 과일 등을 사며 한국어로 인사를 하곤 한다. 인근에는 평소 잘 알고 지내는 교인이 운영하는 세탁소도 있어 가끔씩 들려 점심을 먹기도 한다.
어느 날 그 야채가게 주인이 내가 씩씩하게 길을 건너는 것을 보셨다며 헐레벌떡 콩떡을 들고 세탁소로 뛰어오셔서 "선생님, 길 건너는 것 봤어요. 이 콩떡 좀 잡숴보세요"라고 말했다. 난 너무나 고마워 감격했다. 이 아주머니는 내 학교의 학부모도 아니고 그냥 가끔 가서 과일을 사는 고객일 뿐인데 일부러 콩떡을 주려고 헐레벌떡 뛰어오신 이 아주머니.
난 이 아주머니에게서 요즘 들어 느끼지 못했던 푸근한 인간의 정을 느꼈다. 그러면서 아주머니는 늘 이렇게 남에게 뭐든 주려고 노력하시고 그래서 베푸는 일이 몸에 밴 분이라고 느낌이 들었다. 물론 떡도 아주 맛있었다.
아주머니를 보며 나도 새해에는 이렇게 베푸는 삶을 사는 할렘 116가와 3가의 야채가게 주인 아주머니처럼 그냥 퍼주고 베푸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나는 학교에서 동료 교사들에게 이 가게에 가서 야채와 과일을 사라고 선전도 할 것이다. 콩떡 한 덩어리 얻어먹고 로비하는 것이라고 생각해도 좋고 누가 뭐라고 해도 좋지만 난 이렇게 야채가게 아주머니처럼 소박한 일상 속에서 베풀며 사는 사람들이 새해에는 많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새해에는 그냥 소박한 한 사람으로 소박한 꿈 하나하나 이루려고 실천하면서 정신건강에 신경 써 가면서 치료하고 남을 배려하는 작은 행동으로 우리사회에 감동이 차곡차곡 쌓이는 그런 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