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TV 드라마, 게임 등에서 좀비의 등장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좀비란 인간처럼 살아서 활동하는 시체를 일컫는 말로 상상의 산물일 뿐이다. 그런데 주택시장에서도‘좀비 주택’이 등장해 이에 따른 피해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좀비 주택이란 집 주인도 대출은행도 소유권을 포기한 주택이다. 은행이 차압통보 뒤 차압 결정을 취소해 좀비 주택이 발생한다. 좀비 주택은 관리되지 않고 빈 채로 오랜 기간 방치돼 인근 주민들의 걱정거리가 될 뿐만 아니라 무단침입, 마약제조, 개스폭발 등 각종 사고와 범죄의 온상이 되고 있다. 로이터 통신이 분석한 좀비 주택의 실상과 피해사례 등을 소개한다.
은행이 중도에 차압 취소하며 관리 안 된채 방치
무단침입·마약제조 등 각종 사고·범죄의 온상 전락
권리 없이 소유권만 남은 홈오너는 벌금 등 날벼락
■차압이라서 끝난 줄 알았는데…
환갑을 앞 둔 나이인 조셉 켈러(58)의 악몽은 5년 전부터 시작됐다. 모기지 페이먼트를 10개월간 내지 못해 대출은행인 JP 모건 체이스로부터 차압통지를 받기 시작한 시기다. 수주 후 은행으로부터 다시 경매통보를 받은 켈러 부부는 13년간 정든 집을 떠나 딸의 집으로 서둘러 옮겼다. 차압절차로 인한 마음고생이 심했지만 재정적인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위로로 삼았다. 그런데 2년 전부터 난데없이 각종 소장이 날아들기 시작하며 악몽이 재현됐다.
2010년 부부를 상대로 가장 먼저 소송을 제기한 기관은 카운티 정부. 카운티 정부는 은행이 차압하겠다고 한 주택의 관리상태가 엉망이 돼 건물관리 규정을 위반한 책임을 묻는 소장을 보내온 것이다. 이어 재산세 사정국이 그동안 밀린 재산세와 수도세 등 공공요금을 내라는 통보를 보 내오기 시작했고 급기야 대출은행인 체이스 은행마저 밀린 대출금과 벌금을 포함한 약 8만4,000달러에 대한 독촉전화를 시작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간질환으로 고생중인 켈러의 소셜시큐리티 연금 신청마저 거절당해 시름은 깊어졌다. 거절 사유는 켈러가 아직도 주택 자산을 소유하고 있어 수혜자격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일련의 날벼락 같은 소식에 사유를 알아보니 소셜시큐리티 사무실의 말대로 5년 전 차압됐어야 할 주택이 여전히 부부의 소유로 남아 있었다. 당시 대출은행은 페이먼트 장기 연체로 차압절차를 시작했지만 차압 비용 및 판매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경매처분 및 차압결정을 철회한 것. 이후 은행 측은 부부에게 이같은 사실을 통보했다고 하나 어찌된 이유인지 부부는 연락을 받지 못하고 5년이란 세월이 훌쩍 흘러 부부의 주택은 ‘좀비 주택’이 되어 버렸다.
■알려지지 않았을 뿐, ‘좀비 주택’ 실제로는 더 심각
켈러 부부의 사례와 같은 ‘좀비 주택’ 문제는 실제로 더욱 심각할 것으로 업계는 긴장하고 있다. 반면 언론을 통해 문제가 부각되지 않는데다 개선 의지를 보이는 정부기관도 없어 문제를 더욱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차압 통보 뒤 은행 측이 자체적인 판단으로 차압을 철회해도 이에 대한 책임을 처벌할 수 있는 법적인 근거가 없는 것도 ‘좀비 주택’ 사태의 원인이다. 대런 블롬퀴스트 리얼티트랙 부대표는 “차압을 해도 손해가 발생할 것으로 판단되는 주택에 대해 차압결정을 철회하는 은행이 많다”며 “대출자가 페이먼트를 납부하지 않아도 은행 측이 신경을 쓰지 않고 그냥 방치하고 있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리얼티 트랙에 따르면 주택시장 침체가 시작된 2006년 이후 약 1,000만채의 주택이 차압 위기에 빠진 것으로 추산된다. 이 중 200만채는 차압절차가 완료되지 않은 상태로 여전히 주택시장을 위협하는 이른바 그림자 재고로 남아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은행 측의 차압절차 지연이나 차압철회로 모기지 페이먼트 납부 없이 주택 소유주가 거주하는 경우는 그나마 다행이다. 주택관리 소홀에 따른 문제는 발생할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른바 ‘로보사이닝’으로 불리는 은행 측의 부실 차압처리에 따른 피해자나 켈러 부부와 같은 좀비 주택 소유주들의 문제가 여전히 해결돼야 할 문제들이다. 로보사이닝의 경우 주요 은행들이 피해를 보상하겠다는 합의를 했지만 피해 금액이 너무 적거나 피해자들에게 제때에 적절히 전달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최근 많다.
켈러 부부 사례처럼 집을 비운 뒤 차압결정이 철회돼 좀비 주택 주인으로 전락한 경우 이에 따른 여러 피해가 발생하고 있지만 피해 규모나 사례를 파악하기 힘들다는 것이 큰 문제다. 주택차압과 관련된 부동산법 담당법원, 건물관리 규정 담당기관, 부동산법 변호사 등에 따르면 좀비 주택문제는 현재 표면화하지 않았을 뿐 전국적으로 발생 중이고 앞으로 악화될 것으로 우려된다.
■은행, ‘남는 게 없다’ 압류 포기
좀비 주택 발생의 가장 큰 원인은 은행 측의 차압포기 결정이다.
주택시장 침체 전에는 모기지 연체가 발생한 주택을 은행 측이 차압해 대출자로부터 주택 소유권을 회수한 뒤 주택 시장에 되팔아 모기지 대출금 및 차압 비용을 회수하는 것이 일반적인 차압절차였다. 그러나 주택가격 폭락 후 이같은 은행의 차압절차 관행이 바뀌기 시작한 것.
차압주택을 되팔려면 주택이 팔릴 때까지 은행은 주택 보험료, 재산세, 관리비용 등을 지출해야 하는데 차라리 차압을 하지 않는 편이 은행 측에 오히려 이득이기 때문이다. 주택 소유주로서의 여러 비용의무를 피하기 위한 일종의 ‘전략적인 차압포기’인 셈이다. 대신 은행은 연체된 모기지를 대출수금 대행업자에게 매각해 밀린 대출을 조금이라도 받아내기 위한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
은행 측의 차압통보로 ‘빚 독촉’에서 해방됐다고 생각한 주택 소유주들은 은행 측의 차압취소 결정에 더 심각한 피해에 시달리고 있다. 추심업체로부터 임금이나 세금 환불액을 압류 당하거나 크레딧이 손상되는 것은 가장 흔한 피해다.
재산세, 낙서제거 비용, 건물관리 위반에 따른 벌금납부 고지서나 각종 소송장이 날아드는 것에 따른 정신적인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일부 주에서는 유예기간을 주고 그 기간 비용이 미납되거나 건물상태가 개선되지 않으면 수감결정을 내리겠다고 독촉중이다.
한 은퇴판사는 “좀비 주택 소유주들은 마치 중세시대 노예와 같다”며 “주택을 소유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 소유에 따르는 권리는 없고 각종 의무만 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준 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