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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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의 이야기

2013-01-19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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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옥교 수필가

사람들은 저마다 말한다. “내 지나온 삶을 얘기 하자면 소설로 써도 몇 권은 될 꺼야”라고. 사실 이 말은 어느 정도 맞는다. 내가 살고 있는 로스모어라는 은퇴자의 마을은 이런 면에서 단연 톱이다. 우선 각양각색의 인종들이 모여 사는 곳이기 때문에 더 많은 얘기꺼리들이 있다.

젊으면 어느 날 늙음이 오고 행복했던 기억 뒤엔 고독이 있고, 건강했던 육체가 어느 날 부터인가 병이란 불청객을 맞아 마음대로 되지 않다가 갑자기 죽음이 찾아와 영원한 작별을 하게 된다. 말하자면 인생은 여러 가지 모양의 무대로 나뉘어졌다가 끝 맞춤을 하는 것인가 보다.

그렇다고 늙은 사람들의 인생이 그리 허무하거나 슬픈 것만은 아니다. 여기저기서 분홍빛 로맨스그레이의 소식도 심심찮게 들려온다. 팔십 먹은 여자가 구십세의 남자 친구와 지금 십년 째 열애 중인 사람도 있다. 그 남자는 얼마 전 자신의 자식들과 똑같이 팔십세인 여자 친구에게도 유산을 주기로 벌써 법적인 절차도 끝마쳤다고 한다.


내가 만난 중국계 여자와 월남 여자도 이곳에 들어온 지 한 달 만에 그들의 소원대로 남자 친구들을 만나 모두다 열애 중이다. 손을 잡고 산책을 하거나 영화관에 자주 모습을 나타낸다. 또 재미있는 얘기는 돈 많은 여자들을 만나러 일부러 남자 꽃뱀들이 이곳을 넘겨본다는 얘기도 있다.

내가 사는 이웃에 얼마 전 백세가 넘어 102세가 된 밀튼이라는 남자가 있는데 폐렴에 걸려서 이젠 그의 수명도 다 된 것이라고들 생각했는데 웬걸, 며칠 동안 병원 신세를 졌다가 곧 퇴원을 하고 내가 병문안을 갔을 땐 침대에 앉아 세금정리를 하고 있어서 놀란 적이 있다. 친구 몇이서 그를 찾아가 생일 축가를 불러주고 찬송가도 불러주고 했더니 굉장히 기뻐했다. 그에 비해 그의 아내인 베티는 요즘 치매기가 있는지 정신이 오락가락 한다. 나를 만날 때마다 ‘네 아이들이 몇이지?’하고 계속 묻는다.

지난 여름 막내 아들네서 남편의 생일잔치를 할 때 그들 부부를 모셔 간 적이 있다. 우리 아이들 넷과 손주들 몇 명이 모여서 재롱을 떠는 것을 보고 우리 부부가 정말 복 받은 사람들이란 얘기를 만나기만 하면 했다. 꼬마들이 너무 귀엽다고 부러워했다.

그들 부부는 사십대에 재혼을 했는데 베티의 전 남편 소생들은 모두 젊어서 병을 얻어 죽고 밀튼의 아들들은 만나주지를 않는다고 했다. 모두를 가진 것 같은 그들 부부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있는 것을 보고 모두를 갖춘 사람들은 정말 이 세상에 없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내가 이웃들의 삶을 다 알 수는 없지만 한때 모두들 한 가닥 하면서 자신들의 삶을 아름답게 색칠하며 살았을 것이다. 태어날 때가 있으면 죽을 때가 있듯이 일할 때가 있으면 쉴 때가 있는 법이다. 이제 이곳에 사는 많은 노인들이 자신의 불타던 삶의 현장을 떠나서 모두들 조용하고 평안하게 마지막 인생을 살고 있다. 그들의 마지막 여행도 그렇게 조용하고 평안한 것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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