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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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를 기울이는 것

2013-01-17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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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 전 한국 한 중앙일간지에 실린 판사에 관련된 두 가지 기사가 내 주목을 끌었다. 한 기사는 지난 9일 서울지방변호사회가 ‘2012년 평가 상위 법관’으로 10명의 법관을 선정한 내용이었다. 이 가운데 평가변호사들로부터 100점을 받은 김대웅 부장판사에 관한 인터뷰 기사를 읽었다.

‘경청의 법관’이라는 별명을 가진 김 판사는 재판에 나온 모든 사람들, 특히 피의자의 말을 화내지 않고 끝까지 조용히 들어주며 공손히 대하는 판사로 변호사들 사이에 이름이 났다. 김 판사는 이렇게 말했다. “판사는 내 입장이 아니라 상대편의 입장에서 말을 듣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한 기사는 법정에 나온 사람들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고 화를 내며 막말을 한 유 모 부장판사가 대법원으로부터 견책의 징계를 받은 얘기다. 유 판사는 지난 해 10월 법정증인으로 나온 60대 여성의 말을 귀 담아 듣지도 않으면서 “늙으면 죽어야 해요”라는 막말을 퍼 부었다.


이 두 기사를 읽으면서 나는 어느 편에 속하는 사람인가를 잠깐 생각해 보았다. 나는 될 수 있으면 내 말은 줄이고 상대편 말을 화를 내지 않고 들어주려고 노력하지만 참을성이 부족해 그런지 쉽지가 않다는 것을 가끔 느낀다.

상대편의 입장에서 말을 들어주려고 하지만 모르는 사이에 내 입장의 주장이 튀어나온다. 이런 인내의 인격은 하루아침에 형성된 것은 아니라고 본다. 늘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특히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입장에 있는 지도자들에게는 ‘들어줌과 인내’는 아주 중요한 리더십의 덕목이라고 할 수 있다. 서울변호사회에 의해 ‘경청의 판사’로 선정된 김 판사는 재판장의 자리를 다스리는 자리보다는 섬기는 자리로 생각하는 반면 견책의 징계를 받은 유 판사는 반대로 생각하지는 않았을까?

80이 가까운 은퇴하신 K의사께서 지난주에 있었던 독회 모임에서 개업 초기 때 한 환자와 가졌던 면담에서 겪은 경험을 얘기한 적이 있다. 이 환자는 자신의 말만 계속 할 뿐 의사의 질문에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른 환자들이 기다리고 있기도 해서 좀 서둘렀더니 이 환자는 “선생님, 제 말을 듣고 계신가요?”(Dr. K, Are you listening to me?) 라면서 얼굴을 붉혔다고 한다.

이 일이 있은 후 부터 그는 환자를 면담할 때 마다 시간이 좀 걸려도 환자의 말에 경청하는데 신경을 썼다고 한다. ‘귀 기울임의 인격’은 모든 사람에게 해당하지만 특히 의료인, 법조인, 교수, 목사 등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입장에 있는 리더들이 개발하여야 할 인격이라고 본다.

독회는 회원들이 책을 읽고 와서 서로 느낀 점들을 나누는 독서모임이다. 이날 토의제목은 존 스토트 목사의 저서 ‘현대를 사는 그리스도인’ 가운데 제 6장 ‘듣는 귀’였다.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크게 영적으로 영향을 끼치다가 2011년 소천하신 존 스토트 목사는 그리스도인이 꼭 갖추어야 할 세 가지로 ‘듣는 귀’를 논했다.

즉 하나님께 귀 기울임, 서로의 귀 기울임, 그리고 세상에 귀 기울임이다. 이날 모임에서 우리는 이 세 가지 귀 기울임에 게을리 하고 있음을 다들 고백했다. 특히 공동체 생활 가운데 ‘서로의 귀 기울임’을 등한히 하고 ‘나의 목소리’만 높이는 습관이 있음을 인정했다.

존 스토트 목사는 ‘서로에게 귀 기울임’에서 교회 공동체의 리더인 목회자는 교인들 말에 인내를 갖고 경청하는 인격을 갖추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교인들의 말을 경청하는 사역은 설교만큼이나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독일 나치정군에 의해 처형된 본회퍼 목사의 다음과 같은 말을 인용한다.

“그리스도인 특히 목사들은 종종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항상 뭔가를 주어야 하며, 그것이 그들이 해야 하는 봉사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귀를 기울이는 것이 말하는 것보다 더 큰봉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잊어버린다.”


<허종욱 한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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