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늙은 쥐가 독을 뚫는다

2013-01-12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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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성호 RV 리조트 경영

인간은 존재를 무시당할 때 밟힌 보리 싹처럼 더 강하게 대항한다. 지난 연말 대통령 선거 때 각 언론들이 나이 분포로 투표 숫자를 계산하면서 2030, 4050, 60대까지만 유권자로 취급하고 70대부터는 아예 표 숫자에 넣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70대 이상은 모두 유령 아니면 투명인간인가!

지난달 내 친정어머니는 98세로 미국 대선에, 시어머니는 99세로 한국 대선에 투표를 했다. 한국 선거 날, 어머니가 새벽 다섯 시부터 외출준비를 하고 기도하다가 여섯시가 되자 투표장으로 가서 떨리는 손으로 투표를 하셨다고 서울 시누이로부터 전화가 왔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어릴 적에 우리 할머니가 식구들한테 밀리거나 소외됐다고 생각하면 “늙었다고 괄시 말아라 늙은 쥐는 독을 뚫는다”라며 꼭 자신의 존재를 확인시키고 참견하여 문제에 대한 좋은 해결책을 내 놓으시던 생각이 났다.
아무리 영악한 쥐라도 독은 뚫지 못하기 때문에 독이 제일 안전한 보관소였다. 그런데도 늙은 쥐가 독을 뚫는 다는 속담은 그만큼 내공과 경륜이 쌓인 노인들에게는 현실을 능가하는 지혜가 있다는 뜻이 아닐까?


우리 두 어머니는 미국과 한국에서 지금도 자식들을 위해 기도하며 집을 지키고 계셔서 식구들이 불 켜진 온기 있는 집으로 귀가할 수 있는 포근함을 주시고, 일 년에 한 번 생신 때마다 흩어져 있는 자녀 손들을 모이게 하는 위력을 가지신 분들이다. 그래서 원근각처에서 모여 든 자식들에게 인간의 도리가 무엇인지, 가족관계나 도덕의 가치가 어떤 것인지, 또 자신들의 뿌리를 알려 주는 교육의 장을 마련해 주고 계신다.

얼마 전 우리 리조트에 같은 종류의 RV 쌍둥이 클럽 회원 20쌍이 캠핑을 왔었다. 평균 연령 80세 인 그들은 교사였던 책임자 캐티를 중심으로 3박 4일 동안 캠핑하면서 미국과 세계를 위한 정치, 경제, 도덕에 관해 토의도하고, 오락시간도 즐기며, 봉사하고 있는 단체를 위한 모금 준비로 수공예품을 만들기도 했다. 그들도 우리처럼 부도덕성과 이기주의 물질만능으로 격변하고 있는 세대와 나라 장래를 걱정하며, 가정과 나라를 위해 희생할 줄 모르고 부모와 정부로부터 받을 혜택을 셈하고 있는 많은 젊은이들을 한심해했다.

역사는 재미로 보는 드라마가 아니다. 60년 50년 전 역사의 현장에서 온갖 역경을 극복하며 적절한 방법으로 위기를 극복하며 나라를 지켜온 내공과 경륜을 어떻게 무시할 수 있단 말인가. 민주주의라고 포장해서 정권을 쟁취했던 정치인들은 역사 앞에 과연 얼마나 정직하고 청렴결백했는가!

노령이지만 아직도 독립해서 누구에게 폐 끼치지 않고 긍정적 사고방식으로 생활에 모범이 되고 있는 많은 분들까지 늙었다고 투표 숫자에 넣지 않는 것은 하늘이 노할 일이다. 성경에도 어려운 일이 있을 때는 경험 많은 원로들의 지혜를 구했다는 말씀이 있다. 그런 중에도 원로들을 존경하여 젊음을 숙성시키는 지혜로운 이들이 있다는 것이 희망이다. 한국 대 선 때 무시당한 그들은 독을 뚫어 위기를 모면하게 한 지혜로운 늙은 쥐들이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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