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만남의 소중함

2012-12-27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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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한 주도 남지 않은 2012년을 돌이켜 보면서 지난 1년간 만났던 사람들을 생각해 본다. 나는 선출직 공직자이자 변호사로서 다른 사람들에 비해 많은 사람들을 대하게 된다. 때로는 사람 만나는 게 두렵고 피하고 싶기도 하다.

그리고 선천적이든 아니면 직업병이든 만나는 사람들 마다 좋은 인상을 심어 주어야 된다는 강박관념이 나로 하여금 때로는 필요 없이 지나친 우호적 행동으로 이어지게끔 하기도 한다. 심지어 좁고 어색한 엘리베이터 공간에서 마주치는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도 재미있는 얘기를 건네 보려고 시도한다. 가끔 분위기를 더 어색하게 만드는 우를 범하면서 말이다.

며칠 전 동료 교육위원들에게 성탄 인사편지를 쓰면서 적절한 말을 찾다가 얼마 전 새로 만나게 된 사람들 모습이 담긴 사진 두 장을 보게 되었다. 그 두 사진 모두 내가 지난 10월 말 타이완을 방문했을 때 찍었던 것인데 나와 어깨동무를 하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한 명은 우리 훼어팩스 카운티 방문단이 타고 다녔던 밴의 운전사였고 다른 한 명은 중학교 1학년 학생이었다. 밴 운전사와는 일주일을 같이 다녔다.


그런데 나이가 서른 정도 된 이 운전사는 영어가 미숙했다. 나 또한 대학에서 중국어 공부를 한지 30여년이 지났기에 중국어 수준이 보잘 것 없었다. 그러니 둘 사이의 의사소통이 쉽지 않았음은 쉽게 짐작이 갈 것이다. 그래도 일주일 방문을 마치고 돌아올 때쯤엔 서로 제법 친하게 되었다. 이 젊은 운전사가 자신의 개인적 얘기를 하기 시작했는데 공부를 계속 안 한 것에 대한 후회가 많은 듯했다. 아마 대학을 나오지 못해서 선택할 수 있는 직업에 한계가 있다는 현실이 아쉬운 눈치였다.

내가 그렇게 후회가 찾아옴을 느낄 때가 바로 다시 시작해야 할 적기라고 일러 주자 다음에 내가 타이완을 다시 방문하게 되면 자기가 지금보다 영어를 더 잘 쓸 수 있게 되도록 노력해 보겠다고 다짐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헤어진 후 훼어팩스로 돌아와 한 두 주 정도 지났다.

이 운전사로부터 이메일이 왔다. 영어공부를 위해 나에게 도움을 받고 싶다는 것이다. 가끔 이메일로 영어문장 몇 개씩을 만들어 보낼 테니 바쁘겠지만 문법에 맞추어 교정해 보내 달라는 부탁이었다. 그러면서 같이 보낸 영작문은 정말 어디서부터 손을 보아야 할지 몰랐다. 그러나 혹시 너무 크게 실망할까봐 교정하는 것을 최소화해서 답장을 보냈다. 그 후 두어 주 후에 또 다시 영어 문장 몇이 담긴 이메일이 도착했다. 언제까지 이메일 교환이 계속될지 몰라도 내가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지속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또 다른 사진 한 장에 실린 중학교 1학년 학생은 타이뻬이에서 까오슝으로 가는 고속열차 안에서 만났다. 이 학생은 자기 아버지와 같이 여행 중이었는데 무엇보다도 반가웠던 것은 작년까지만 해도 훼어팩스 카운티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외교관인데 타이완에서 근무를 하기에 이제는 타이뻬이에 있는 미국학교에 다니고 있다고 했다. 훼어팩스에서 다니던 학교부터 시작해 대학까지 얘기가 미쳤는데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어떤 한 대학교에 진학하고 싶다 했다. 마침 그 대학교는 내가 과거에 입학허가를 받은 곳이어서 서로 한참 같이 얘기할 소재가 되었다.
많은 틴에이저 학생들이 그러하듯 이 학생도 본인의 아버지보다 제 삼자의 얘기를 더 진지하게 듣는 것 같았다. 대학교 합격여부가 결정이 나는 5년 후에 본인이 원하는 그 학교에 꼭 합격해 나에게 좋은 소식을 전해주기를 바란다는 부탁을 하며 헤어졌다. 밴 운전사나 중학교 학생 모두 어쩌면 우연히 지나치다 만난 사람들로 치부할 수 있다.

그러나 한편 그들은 지구상의 수 없이 많은 사람들 가운데 내가 믿는 하나님이 특별히 나에게 만나라고 준비하셨던 사람들일 수도 있다. 지난 한 해 동안 여러 가지 일로 만나게 된 사람들과 지난 주 뉴타운에서 어이없게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은 가족들을 생각하며 사람과 만남의 귀함을 감사해본다. 모두 하나하나 소중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연말연시를 맞아 모든 사람들에게 건강과 은혜를 간구한다.


<문일룡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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