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특별한 결혼기념일

2012-12-22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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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미자 수필가

특별한 행사가 도시 외곽에 있는 이탈리안 식당에서 있었다. 은퇴 후 남편이 함께 연주하고 있는 샌디에고 만돌린 오케스트라 회원 중 한 부부의 65주년 결혼기념행사였다.

회원 부부와 친척, 친구 등 50여 명이 모였다. 라자냐와 피자, 그리고 만돌린 협주로 저녁식사를 마련한 늦은 오후였다. 벽의 한쪽에는 결혼식 때 키스하는 젊은 부부의 커다란 흑백사진이 있고, 꽃과 손님들이 들고 온 카드가 앞에 놓여있었다.

대리운전사를 데리고 수요일 저녁마다 오케스트라 협주 연습실을 항상 같이 찾는 노부부의 모습이 아름다웠다. 두 살 연상의 아내는 아직도 연주하고, 86세의 포리스트 아저씨는 시력이 나빠 악보를 읽지 못해 두 해 전 그만두었다.


바이올린을 연주하던 아내가 어느 날 악기점에서 만돌린을 보고 반하여, 남편까지 합세하여 연주한 세월이 20년이 넘었다. 특별한 운동을 하는 것도 없다는데, 그들처럼 건강하게 만돌린을 연주하는 멋진 부부가 회원 중에 또 있다. 연주를 볼 때마다 나는 100살 가까이 장수하다 세상을 떠난 연주자들에 관한 이야기를 종종 들었기에, 주인공인 두 분의 나이가 놀랍지 않았다. 지금도 함께 모여 연습하며 여기저기로 연주하러 다니는 80대의 회원들이 여러 명이기 때문이다.

포리스트 아저씨는 65년 동안 펄 아주머니와 한 번도 싸우지 않고 살았다고 한다. 그 비결은 작은 것 가지고 다투지 않은 것이라고 아저씨는 말했다. 또 아저씨의 낙천적이고 유머 있는 성격이 집안분위기를 평온하게 만들었다.

1947년, 군인이었던 20대 청년이 전화회사 벨에 근무하는 아가씨에게 반하여 청혼했고 펄 아주머니도 즉각 응하여 결혼했다고 한다.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포리스트 아저씨가 재미있게 설명했다. 예를 들면 부부가 머리를 맞대고 누구를 대통령으로 선출하지 하고 고민하며 살았다고 해서 모두를 웃겼다.

결혼할 때 가구가 딸린 아파트의 렌트비는 매달 35달러였다. 남편의 봉급은 150달러여서 아내도 잠시 직장생활을 하다 전업주부로 살아왔다. 다양한 삶을 살아온 사업가 남편은 3년 후 4,500달러를 주고 집을 샀다가 2년 후에 집값이 6,500달러가 되어 집을 팔고 옮겼다. 전기기술을 가진 그는 집을 짓고 살다가 집값이 오르면 팔고 하면서 세 자녀를 키웠다고 했다.

알고 보니 그날의 특별한 행사를 마련한 이탈리안 식당은 사위가 주인이었다. 막내딸이 7년 전 심장마비로 가버렸지만, 지금까지 홀로 사는 사위가 동서와 처남이랑 한마음으로 차린 축하 저녁이었다. 그 주인이 해마다 40여명의 만돌린 협주 회원들을 초청하여 피자를 대접하고 식당 손님들에게는 음악을 선물해주던 이유를 나는 그제야 알았다.

초청장 위쪽에는 부부가 1946년에 처음 데이트를 했던 캘리포니아 마린 카운티에 있는 바닷가를 지난해 찾아가 찍은 작은 사진이 들어있고, 아래쪽에는 선물을 정중히 사양한다는 메시지가 들어 있었다.

나는 예쁜 양초를 선물로 가져갔다. 며칠 후 펄 할머니가 선물을 잘 받았다며 금박과 은박으로 장식된 아주 예쁜 감사카드를 우편으로 보내왔다. 그날 느꼈던 깊은 정이 가슴 속으로 강물처럼 흘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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