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못 본척하지 말자

2012-12-08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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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론마당

▶ 강기석 / 교육전문가

1교시부터 유치원생에서 초등학생까지 전교생이 한 줄로 서서 박스를 하나씩 들고 강당으로 향하길래 필자도 따라가 보았다. 박스 하나씩 둘이 서로 붙잡고 기도문을 읽더니 ‘Samaritan’s Purse’라는 박스에 정성껏 담는다. 전 인류의 축제인 크리스마스에 선물하나 받을 수 없는 제3세계 어린이들에게 나누어 줄 성탄절 선물이다.

물론 부모님들이 준비해 주셨겠지만, 이 날 모은 신발박스만한 선물이 무려 260개였다. 이런 식으로 각 학교, 교회 등 전 미 대륙에서 모아질 박스를 상상해보니 적지 않은 숫자가 될 것이 분명하다.

성탄절이 뭔지도 모르는 지구의 한쪽 구석의 아이들이 치약, 치솔, 인형, 과자 등이 들어있는 작은 박스를 열어 봤을 때의 얼굴을 떠올려보니, 기독교학교에서 벌어진 이 작은 사랑의 실천에 뭉클하였다.


이 크리스마스 선물주기 운동을 주도한 단체는 ‘선한 사마리아의 지갑’(Samaritan’s Purse)이며, 그 창시자인 밥 피어스는 2차대전 후 아시아를 중심으로 전 세계의 가난하고 소외된 곳에 복음과 가난퇴치운동을 벌이다가 한국의 거제도를 방문한 것이 계기가 돼 1970년 이 거룩한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다.

선한 사마리아인은 누가복음의 비유에서 유래한 것으로 현대에서는 ‘선한 사마리안법’으로도 정하고 있다. 위험에 처한 사람을 보고도 돕지 않으면 처벌할 수 있도록 한 일명 ‘구조 거부죄’ 또는 ‘불구조죄’라고 불리운다.

영국의 황태자비 다이애나가 한밤중 교통사고로 죽어갈 때 즉시 도와주지 않고 사진만 찍은 파파라치가 처벌을 받았다. 한국에서는 프로야구 롯데 임수혁선수가 경기도중 쓰러진 후 응급조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것이 계기가 되어 응급의료 개정안을 2008년 통과시켰다.

한 사람이 예수께 나아와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묻는 말에 예수는 “못 본 척 지나가는 제사장도 아니요, 피하여 지나가는 레위인도 아니요, 불쌍히 여겨 자신의 사재까지 주면서 돌보아 준 사마리아인이 이웃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가서 그리하라(Go and Do Likewise)”라고 했다.

세계의 절반은 왜 굶주리는가? 못 본척해서가 아닐까? 이번 성탄절에는 못 본척하지 말자. 거제도를 못 본척 하지 않았던 밥 피어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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